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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2. 2022

이탈리아 남부에 첫눈 오시던 날

-첫눈은 안 청춘도 설레게 한다


우리 동네 첫눈 오시던 날 풍경..!!



    서기 2022년 3월 초하루 오전 10시경(현지 사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좀처럼 보기 드문 첫눈이 오셨다. 우리는 퓌렌쩨서 살다가 하니의 그림 수업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어느덧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하니는 이탈리아서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를 피해 두 해 겨울을 한국에 피신해 있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곳 바를레타의 집을 나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빈자리가 커 보였다. 그러나 어쩌누 세계인들이 모두 다 겪는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겨울도 무심했다. 이곳 이탈리아 남부의 겨울은 절기상 겨울이지만, 우리나라의 꽃샘추위에 장맛비가 내리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시면서 바람이 불고 으스스 추워지는 것이다. 음산한 날씨..  



한국의 영하 날씨와 비교가 안 되지만 이곳 사람들은 겨울을 나는 동안 마치 북극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두툼하고 맵시 있는 겨울옷을 챙겨 입는다. 겨울의 기온은 최저 영상 4도씨에서 10도씨 내외를 오간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이 동네가 무심하게 느껴진 건 다름 아니다. 빌어먹을 어쩌다 함박눈이라도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을 네 번째 만나는 동안 딱 한차레 아주 잠시 잠깐 진눈깨비 몇 개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다. 그 시간은 촌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이곳에는 하얀 겨울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아드리아해 곁의 바닷가에는 풀꽃들이 자지러진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모래밭에 머리를 박고 있던 녀석들이 새싹을 틔우고 떼창을 불러젖히는 것이다. 그녀가 없는 동안 주로 봄꽃 요정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였을까.. 



첫눈은 안 청춘도 설레게 한다


먼 나라 남의 땅에서 무료한 시간을 두 해 동안 보내게 된 것이다. 두 해 동안 혼자 지낼 때 함박눈이 펑펑 퍼엉펑 쏟아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인지 아실랑가 모르겠다. 만약 새하얀 함박눈이 퍼엉펑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면 마구마구 나대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오래전 유년기 때부터 나와 누렁이를 신명 나게 만드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지 말자. (그거 물으면 바보..ㅋ) 


하니가 길 건너 인도를 따라 따바끼(Tabacchi_담배와 복권 등 자잘한 소지품을 팔거나 세금 등을 납부할 수 있는 곳이며, 이탈리아 전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담배만 파는 곳으로 성업 중이다.) 앞을 지나 간다. 그녀의 발걸음은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바쁘다 바빠..


그냥 좋은 것이다. 누렁이처럼 그냥 좋아 날뛰는 것이다. 누렁이한테도 물어보지 말자. 녀석이 대답이나 해 줄 것 같은가.. 걍 컹컹 멍멍이 전부다. 그리고 다시 좋아라 날뛰는 것이다. 글쎄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행동이 나로부터만 발현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한 여자 사람은 나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 주인공이 하니였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그녀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함박눈이 쏟아지는 풍경을 보자마자 마음은 일찌감치 집 바깥으로 나가 있는 것이다. 그때 모습을 이렇게 써 둔 바 있다. 



이탈리아 남부에 첫눈 오시던 날




"하니가 현관문을 열다가 갑자기 "눈이다. 눈 온다~"하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녀는 "어서어서..!" 하며 옷을 갈아입는 등 바쁘게 자기를 다그쳤다. 나는 이미 우산을 챙겨 들고 도로변으로 나가 비가 섞인 함박눈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도로변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공원으로 향했다. 깜짝쇼를 연출한 함박눈은 대략 10분여 만에 그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와 눈에 젖은 구도시에 빗물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우린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ㅋ" 하고 우스게 소리를 했다."



나는 조금 전 우리 동네서 가장 손님이 많은 C까페 앞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집 근처의 풍경으로 이때만 해도 함박눈에 점차 굵은 비가 섞이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하늘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언제 비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배경이 어두운 곳을 찾아 인증숏을 날리고 공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공원으로 이동하면 함박눈이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으므로 바쁜 걸음으로 공원으로 향했다. 



철재 울타리를 두른 공원이 저만치 보일 때 이날 함박눈이 가장 많이 쏟아질 때였다. 빗방울도 굵었다. 



공원 앞에 다다르자 절정에 이른 함박눈..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런데 이때부터 함박눈이 점차 희미하게 변하면서 빗방울이 더불어 굵어지기 시작했다. (영상을 열어보시면) 그녀의 아이폰이 연신 파사체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 뒤로 극락조화(極樂鳥花, Strelitzia reginae)가 함박눈과 비에 젖었다.



공원 중심에 들어서자 함박눈은 점차 굵은 빗방울로 바뀌면서 누렁이처럼 날뛰는 두 사람의 천방지축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깜짝쇼를 연출한 시간은 불과 10분여의 시간..



이탈리아 남부에 내린 흔치 않은 함박눈은 안 청춘을 날뛰게 하면서 저만치 멀어져 갔다.



함박눈.. 참 희한한 물질이다. 속으로는 바를레타 두오모(Basilica Cattedrale Santa Maria Maggiore)와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 앞 풀밭 가득 새하얀 눈이 쌓이기를 학수고대했지만, 보시다시피 장맛비가 지나간 듯한 휑한 풍경 속에 둘만 남았다. 짧은 시간 흩뿌린 함박눈..



더 희한한 일은.. 그녀가 이곳 바를레타에서 겨울을 함께 보내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 선물을 보낸 것이다. 하늘에서 누군가 우리를 빤히 내려보고 있거나, 곁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두 사람을 후다닥 불러내는 것이랄까.. 우리가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도.. 청춘은 더더욱 아니며 안 청춘인데.. 마음은 여전히 유년기에 머물러있다고나 할까..



물질과 비물질.. 육체는 함박눈을 닮아 곧 멀고 먼 순례길에 오를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절대로 변치 않는 존재.. 오늘 아침 다시 한번 더 하늘에 감사드린다. 잠시 찌들었던 마음을 말갛게 씻기 운 기적 같은 일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동네 집 앞에 깔아 둔 검은 대리석이 반들반들 빛이 난다. 우리 동네는 비가 오시면 구도시 전체가 반들거린다. 그래서 나는 고도 바를레타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부른다. 참 아름다운 도시에 함박눈이 오셨다.

검은 대리석이 깔린 도로는 거상(부자)들이 살았던 곳이란다. 이 길은 아피아 가도(Via Appia) 바로 곁에 위치한 곳으로, 아피아 가도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도로이다. 이 도로는 로마에서 시작되어 뿔리아 주의 브린디시(Brindisi)까지(이탈리아 장화 뒤축) 이어진다. 브린디시는 그리스와 중동의 주요 교역항으로 아피아 가도의 종점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녀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돌아본 지역이다. 암튼 함박눈으로 오신 첫눈은 안 청춘도 설레게 한다는 거.. ! ^^


La prima neve è arrivata nel nostro quartiere_BARLETTA
il Primo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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