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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8. 2022

봄비, 그리우면 사랑했단다

-비에 젖어 더 조용한 우리 동네 풍경

비 오시는 날 동네 한 바퀴..?!


   이틀 전.. 그러니까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이곳에는 꽤 많은 비가 오셨다. 비 님이 오셨다. 봄을 마구 떠미는 봄비.. 이런 날은 집에서 방콕 할 수 없는 강한 유혹에 빠져든다. 당장 카메라와 우산을 챙겨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올 생각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이미 동선이 짜여 있었다. 맨 먼저 집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한 건축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실리카 디 산 도미니코(Basilica di S. Domenico)에 속한 한 담벼락이었다. 이 교회의 역사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담벼락 곁을 지나면 박제된 시간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이다.



가톨릭의 나라 이탈리아 어느 곳을 가도 볼 수밖에 없는 두오모와 교회의 건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랄까.. 

비가 오시면, 봄비가 오시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었다. 박제된 시간이 봄비에 촛농처럼 녹아내릴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마른 담벼락을 적신 봄비가 희미하게 숨겨진 시간을 진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때부터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봄비, 그리우면 사랑했단다


   서기 2022년 3월 7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비 님이 오시고 있다. 그 님은 아이들의 착한 눈망울에 비친 물방울처럼 하염없이 주룩주룩 뚝뚝 떨어지고 계신다. 어떤 분들은 이런 비를 너무 좋아하셨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분들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웅크리고 앉았을까. 

비가 오시면.. 냉장고에서 막 끄집어낸 젤라토처럼 달콤함이 살살 사알살 녹아내릴 것이다. 혀를 내밀어 핥기도 전에 침샘에 고이는 말간 액체.. 그 속에는 그리움이 손을 뻗어 당신의 가슴에 웅크리고 있는 회한들을 깨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이틀.. 아니 대략 6개월 동안 내 마음은 조국의 산하와 이웃들과 지인들과 형제자매들 등등 내가 아는 얼굴들을 떠올리곤 했다. 추억 속에는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기억들이 오롯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어머니와 조국으로 이어진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끈이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곳. 



이틀 전, 비가 주룩주룩 장맛비처럼 내리는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때 만난 풍경들 속에 그리움이 젖어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움의 출처를 빗소리와 함께 추적추적 추적해 보니, 그곳에 나의 유년기가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 등을 통틀어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풍경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기억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풍기는 젖내를 잊을 수 없다. 그럴 리가 없다. 내 조국에 어머니가 없었다면 존재 이유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사랑받고 자란 땅.. 나를 사랑한 어머니.. 그 사랑이 하루 종일 그리고 비가 오실 때마다 말간 빗방울에 묻어나는 것이다. 이날.. 나는 운동화가 흠뻑 젖도록 우리 동네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어쩌면.. 머지않아 비에 젖은 '아드리아해의 진주' 바를레타가 그리움의 목록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우엇이든 그리우면 사랑의 결실이란다. 사랑받은 흔적이란다. 그게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란다.


Una vista tranquilla di Barletta bagnata dalla pioggia
il 07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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