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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22. 2022

5년 만에 다시 찾은 맛집의 해프닝

-낭만 도시 춘천의 <남촌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 앞에서 정신 못 차린 이탈리아 요리사..!!


서기 2022년 9월 22일 오후, 아침부터 바쁘게 지내다가 점심때가 되어 하니와 함께 춘천의 대표선수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그곳은 우리의 단골집이며 맛집의 이름은 남촌 막국수.. 정말 촌스럽게 생긴 맛집이다. 그러나 막국수가 먹거 싶으면 절대 저얼대로 다른 집을 찾지 않는다. 최고의 맛집이자 아직도 구형 가옥을 그대로  시용하며 가족들이 가게를 운영한다. 정말 탄탄한 가게이자 변함없는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지난 2020년 5월에 한국에서 챙겨간 사진첩을 열어 <세상에 마약 막국수도 있다>라는 제목으로 포스트를 끼적거린 바 있다. 한밤중에 깨어나 출출할 때 마구마구 당긴 막국수.. 



오늘자로 이탈리아서 귀국한 지 딱 두 달이 됐다. 하니와 함께 볼일을 마치고 벼르고 별렀던 막국수 집으로 향한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전혀 나 답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현장을 소개해 드리기 전에 먼저 포스팅한 자료사진을 잘 봐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지난 편에 기록해 둔 관련 포스트의 글을 옮겨야 제 맛이다. 이랬다. 이 맛집의 반찬은 달랑 두 개.. 열무김치와 무로 만든 동치미가 전부이며 예나 지금이나 그 맛이 1도 변하지 않는 명품이다. 모두 맛집에서 키운 식재료들이다.


무 물김치는 잘 숙성되어 한 번 맛을 보면 까무러칠 정도로 시원하고 형용할 수 없는 맛이 입안에 감돌아 주문한 막국수 등이 나오기 전에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다시 한 그릇 더 달라고 보챈다. 물론 반찬은 추가로 먹어도 따로 계산을 하지 않는다.  암튼 얼마나 맛있는지 지난 편을 확인해 보기로 하자.




세상에 마약 막국수도 있다


한밤중에 깨어나 사진 한 장을 눈앞에 두고 보니 침이 절로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야참이 급 당기는 것이다. 사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 강원도 특산품이라 말할 수 있는 막국수의 맛깔난 풍경이다. 사진을 펴 놓고 보면 당시의 느낌들이 주저리주저리 느껴지면서 시장기를 폭발시킨다. 당시에 느꼈던 막국수의 맛이 입안에 돌기 시작하면서 행복한 고문(고민 아님)이 시작되는 것. 


하니와 함께 강원도 쪽으로 산행이나 스케치 여행을 떠나면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들렀던 곳이 우리만의 단골 춘천 남촌 막국수집이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소개해 드리는 막국수집은 춘천시 근화동 당간지주길에 위치해 있다. 요즘은 너무 유명한 맛집으로 알려져 있어서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단번에 찾을 수 있고 리뷰글을 만날 수 있다. 이 맛집은 대를 이어 막국수를 빚어내는 곳이다.




주인 내외는 5060 혹은 6070 세대.. 우리 세대이다.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던 시절 막국수를 팔아 생계를 이어왔던 것이다. 아이들은 막국수를 판 돈으로 학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놀 곳도 마땅치 않었던 시절..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의 일을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주로 그러했으므로 어깨너머로 배운 막국수 요리 리체타는 이 집안사람들 모두가 훤히 꽤 차고 있다. 손님들이 막국수의 특징을 물어보면 술술술 설명이 곁들여진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나름 요리법을 터득(?)한 비밀 가운데 남촌 막국수가 지향하고 있는 요리법과 무관하지 않다. 


이 맛집은 손님들로부터 입소문이 퍼지기 전부터 춘천시민들이 애용하던 맛집이었는데 대를 이어 영업을 하게 됐다. 이 집의 딸내미와 며느리는 주로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고 주방에서는 아들과 사위 아버지 어머니가 요리를 만들어 낸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오래된 집 벽에 붙어있는 촌스러운 차림표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게 된다. 



이 맛집은 오래된 옛집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적당히 수리해서 사용하는 집이다. 손님이 끊이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인의 취향과 함께 단골손님들이 좋아한 이유도 있다. 이 맛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 차림표에 쓰인 음식들 수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이 집의 자랑거리인 막국수와 감자 부침개 만둣국 및 쟁반막국수와 돼지고기 수육이 전부나 다름없다. 


그리고 음식을 주문해 놓고 내놓는 반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찬은 딱 두 가지.. 동치미와 열무김치 그리고 막국수 육수가 노란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이게 전부이다. 이곳에 남촌 막국수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10년 15년.. 도 훨씬 더 된 후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넌지시 깨닫게 된 것이랄까..



서울에서 강원도 방면으로 이동할 때면 으레 생각나는 게 있었다. 막국수의 면발..? 아니었다. 그럼 뭔가.. 막국수 면발은 쫄깃 거리게 만들면 그만! 이 집의 자랑은 막국수를 비벼먹는 양념장에 맛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딸내미의 막국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양념은 주로 우리나라 거예요. 열무김치와 동치미는 우리가 농사지은 것을 사용하고요"라고 말한다. 


매콤 달콤 고소하고 마구 당기는 이 집의 양념은 적당히 매운 청양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에, 참기름이 적당량의 찧은 고기와 잘 어우러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양념장을 굳이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올림픽대로를 따라 경춘가도로 가면서 침샘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건 쪼올깃 매콤 달콤 고소 아삭 거리는 등의 맛이 아니라.. 약간은 시큼털털하고 션한(이런 표현 너무 좋다) 동치미 국물과 입안에서 아삭 거리는 열무김치 맛 때문이었다. 강원도 맛의 대표선수가 반찬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하니와 함께 이 맛집에 들르는 순간 맨 먼저.. 주문도 하기 전에 단골의 밥상 앞에 동치미와 열무김치가 나오는 것이다. 이미 주 요리인 막국수를 먹기도 전에 전채가 등장하는 것이다. 막국수는 그다음에 배 터지게 먹는 것..! 아마도 이런 식성이 우리만의 단골 막국수 집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적지 않은 손님들은 이 같은 맛에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자료 사진에 등장한 열무김치와 동치미는 두 번째 나온 것으로 막국수를 먹다가 남은 것. 여기에 감자 부침개와 돼지수육을 더 먹게 되면 추가로 더 달라고 하기도 전에 딸내미가 눈치껏 반찬을 추가로 내민다. 그렇게 되면 결국 얼마간의 반찬이 남게 되는 것. 


그러면 그걸 그냥 다 버려야 할까.. 아니다. 하니가 "요거 좀 싸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딸내미는 정중하게 찬 봉지에 담아 주는 것. 따라서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오면 열무김치와 동치미가 냉장고 한쪽에서 '날 잡아잡쑤'하고 째려본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알게 됐다는 남촌 막국수의 맛의 비밀은 무엇일까.. 



한밤중.. 침이 자꾸만 꼴가닥 거려서 한마디로 정리하고 글을 맺는다. 고급진 요리는 만드는 방법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할 뿐만 아니라,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가로부터 전수받은 이탈리아 요리법인데 이 맛집이 유명한 이유가 그러한 것 같다. 세상에는 서울 광장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마약 김밥뿐만 아니라, 춘천 소양강 호반공원 옆에 가시면 마약 막국수도 먹을 수 있다는 거.. 강추해 드린다! 그나저나 이 야심한 시각에 어쩌나..!! ㅠ 



5년 만에 다시 찾은 맛집의 해프닝




포스트를 장황하게 끼적이는 동안 남촌 막국수의 그리움이 얼마간 해소되었다. 그리고 지금 보시는 열무김치와 동치미 김치(강원도 사투리로 '동지미'라 한다)는 오늘자 서기 2022년 9월 22일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에 카메라에 담은 풍경이다. 그런데 평소 반갑게 맞이해 주던 이 맛집의 쥔장 딸내미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식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마스크를 벗고 "내가 누군지 아세효?"라고 물었더니 카만 마스크 너머로 멀뚱멀뚱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한다. 



5년 만에 달라진 풍경이 약간은 서운했지만 하니에 앞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앉은뱅이 테이블 위로 김치 두 그릇이 나왔다. 하니가 열무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동안 쥔장이 곁으로 다가와 공손히 "사모님은 알겠는데.."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히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하니의 주문이 이어졌다. 그녀는 "보통 하나.. " 나를 가리키며 곱빼기 하나.."를 주문했다. 이때 반찬 두 그릇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된 습관이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쥔장이 주문한 음식을 상 위에 올려둘 때 해프닝이 발생했다. 

 


5년 만에 눈 잎에 등장한 막국수를 보자마자 후다닥 육수를 끼얹고 양념과 고명을 한쪽으로 밀어 넣으며 쓱싹쓱싹 비비려던 찰나.. 아뿔싸!! 인증숏을 놓쳤네..ㅜ 그래서 하니 앞에 놓인 막국수를 건너다보니 하니는 나보다 더 빨리 비벼놓고 한 입 한 젓가락이 시작될 찰나였다. 어쩌나.. 그래서 한쪽으로 밀어둔 양념과 고명을 다시 뒤집어 놓으니 이런 꼴로 변했다. (흑흑..ㅜ) 즉시 비교에 들어갔다.

 


위 자료사진 좌측이 5년 전에 먹었던 남촌 막국수의 비주얼이고, 우측이 오늘 점심 때 정신줄 놓은 막국수 비주얼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런 일이 생길까..ㅜ 비주얼도 그대로 맛도 그대로 쥔장의 친절도 여전한데 5년 만에 달라진 나의 향수병이 낳은 해프닝 치고는 고약하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사.. 스파게티보다 그 어떤 이탈리아 요리 보다 사랑했던 남촌 막국수.. 여러분들도 이와 같거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암튼 작은 소원 하나가 풀린 셈이다. 



Quando vai al ristorante, non ti svegli_Namchon Makguksu

il 22 Settem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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