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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03. 2022

첫눈, 여전한 설렘

-12월이 선물한 겹경사


첫눈이 오시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서기 2022년 12월 3일 오전,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만난 새하얀 전령사.. 밤사이 카타르 월드컵에 미쳐 날뛰다가 만난 전혀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른 새벽에 하니가 "눈이다. 눈..!"이라고 아이들처럼 외쳤을 때만 해도 잠이 덜 깼다. 간밤에 응원을 하면서 용을 쓰고 긴장을 너무 한 탓에 온몸이 경직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모처럼 느끼는 짜릿한 쾌감.. 


아마도 이런 느낌으로 우리 국민 다수기 이심전심 태극전사들과 함께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을 게 아닌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잠자리에서 쉽게 눈을 감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유소년기 혹은 청년기 혹은 장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춘도 아닌 안 청춘도 여전한 흥분과 설렘이 일어난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만약 지천명을 지나 이순 그리고 그 너머에 이르면서 감수성이 사라진다거나 무디어진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만난 첫눈의 흔적들




집을 나서면서 카메라를 챙겼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은 집 앞 화단까지 접근했다. 화단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미던 화초들이 고개를 떨군 자리에 납작 엎드린 작고 앙증맞은 신의 그림자.. 



11월의 끝자락에 매달렸던 국화가 하얗고 고운 떡가루 뒤집어쓴 채 나를 빤히 바라다보고 있다.



그때 불현듯 어머니와 유년기의 한 녀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구 이 녀석아. 춥지도 않니? 입술이 새까맣구나..ㅜ"


어머니는 개구쟁이 녀석을 품에 안고 시퍼렇게 멍든 것처럼 언 녀석의 손을 가슴속으로 집어넣는다. 얼음장처럼 꽁꽁 언 녀석의 손에 어머니의 탄력 잃은 젖무덤에 덮이며 온기가 전해진다. 어머니의 체온으로 녹여낸 녀석의 손바닥..



"엄마, 이제 괜찮아요."

"그래, 어여 밥이나 먹자"


그때가 언제였던가.. 요즘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풍경들이 60년대 칠 남매를 둔 집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넉넉하지도 않던 시절.. 시쳇말로 금수저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 보듯 하던 시절이다. 공부보다 놀기를 더 좋아한 녀석이 어느덧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상전벽해 대명천지..



어머니께선 "공부하라"며 절대로 다그치지 않으셨다.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 바라셨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가운데는 어머니가 오롯이 자리 잡고 계신다. 이른 새벽 집에서 가까운 샘터에서 길러온 정화수를 떠다 놓고 빌고 또 비셨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 아이들과 지아비 그리고 노모의 건강을 지켜 주시옵소서.. 빌고 또 비나이다"



딸 둘 아들 다섯.. 대식구를 거느린 우리 집에 유일한 금남구역이 정지(부엌)였다. 어느 날 우연히 정지 문간 틈으로 들여다본 풍경 속에 어머니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치성을 드리고 계셨다. 


(오.. 어머니..ㅜ)



첫눈이 오신 날 도사관 입구에서 만난 눈사람.. 근엄해 보이는 아버지 눈사람과 귀여운 아가 눈사람.. 자주 봐온 눈이지만 첫눈의 느낌은 남다르다. 설렘 가득하다. 불감증 환자까지 벌떡 일어나게 하는 풍경이 당신 앞에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세상에 쫓기다 보면 정작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놓치기 쉽다. 일 때문에 알량한 권력이나 지위 등으로 당신의 순수한 감성이 덕지덕지 때가 묻어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가면 언제인가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렇게 천하보다 더 귀한 당신의 가슴에 하늘의 복이 소복소복 쌓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당신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 그동안 바쁘게 지내면서 잊고 산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를 첫눈이 소환해 주셨다.



그분들은 모두 하늘나라에 계신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설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늘나라의 소식을 오롯이 담아낸 첫눈 앞에서 행복하다.



Il giorno in cui siamo arrivati al round dei 16 della Coppa del Mondo
il 03 Dicem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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