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일주 여행서 만난 마추픽추의 오래된 추억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우리 모두는 철새..?!!
서기 2023년 4월 11일 저녁나절(현지시각), 하니가 쪼그려 앉아 바라보고 있는 곳은 마추픽츄.. 남미일주 여행 중에 꼭 가 보고 싶었던 이곳을 젓 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마침내 잉카제국의 심장에 도착한 것이다.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상념에 빠져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잃어버린 공중도시'라고 부르고 있다.
페루의 고도 꾸스꼬에서 기차를 타고 오면 수월하고 힘도 들지 않을 텐데 굳이 잉카 트레일(Inca Trail)을 고집하며 일주일 동안 강행군을 했던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청춘들이 군에서 행군을 하는 건 비교조차 안 될 잉카트레일.. 매일 눈만 뜨면 걷고 또 걷고 다시 로지에 들러 곯아떨어지기를 반복하며 트래킹이 끝나는 날, 마추픽추와 우뚝 솟은 와이나픽추(Wayna Picchu_늙은 봉우리라는 뜻)가 바라보이는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마추픽추와 우뚝 솟아있는 와이나픽츄.. 잉카의 심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말잇못..!!
나 역시 잉카의 심장을 바라보며 뒷모습과 인증숏을 남겼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생략했지만, 지난 여정 <Machu Picchu, 멀고 먼 잉카트레일> 편에서 그 힘들었던 과정을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마침내 잉카의 심장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섰다..! 아내는 목놓아 펑펑 울었다. 얼마나 크고 서러운 울음이었던지 산타 테레사 로지(Santa Teresa Lodge)가 떠나갈 듯했다. 그곳은 일주일간의 잉카 트레일이 끝날 무렵에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이 하룻밤을 노지에서 묵는 곳이었다. 잔디밭에 텐트를 여러 개 쳐 놓고 하룻밤을 야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풍경은 잉카 트레일(Camino del Inca-잉카의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는데 산타 테레사 로지의 야영은 지금까지 해 왔던 야영과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다. 머나먼 여정을 끝마치고 하룻밤만 자고 나면 잉카의 심장이라 불러야 좋은 마추픽추에 입성할 수 있는 곳이었다.
로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잉카문명을 일군 우루밤바 강을 건너게 되고, 강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하루 종일 걸으면 마추픽추의 배후 도시 아구아 깔리엔떼스에 도착하는 것. 그리고 그다음 날 잉카 트레일의 대장정을 끝내는 공중도시 마추픽추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땅거미가 진 로지에서 피스코나 맥주 등을 마시며 곧 잠들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 그 순간 텐트 속에서 아내가 목놓아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처음엔 잠시 흐느끼는가 싶더니 그 흐느낌은 로지를 크게 진동시켰다.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로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 텐트로 몰려들었다.
"제발 그만 좀 울어..!!"
사람들은 '무엇 때문인지' 혹은 '괜찮은지' 물었는데 나는 "별일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아내의 울음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서럽게 우는 아이들 울음소리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랄까. 급기야 누군가 우리 텐트에 문제가 있다며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은 텐트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플래시로 텐트 내부를 비추며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그래서 "아내가 가끔 술을 마시면 이런 행동을 보인다"며 얼렁뚱땅 아무런 일도 없다고 말해 그들을 돌려보냈다. 소동은 그것으로 끝났다. 아내는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던 것일까.. 아이들처럼 훌쩍거리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대략 난감한 사정에 처한 것도 잠시 산타 테레사의 밤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마지막 여정에 돌입했다. 로지를 출발한 우리는 우루밤바 강 옆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군대생활의 행군은 비교가 안 될 정도랄까. 그나마 나의 배낭을 책임져준 짐꾼은 산타 테레사에 도착하기 전에 임무를 마치고 헤어졌다. 그는 쿠스코로 되돌아갔다.
-남미일주 여행서 만난 마추픽추의 오래된 추억
한 때 입으로 달달 외어 목청껏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노래 '철새는 날아가고(El Cóndor Pasa)'란 노래.. 참 애절하게 부른 노래였고 쥐어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슬픈 가사였다.
이 노래의 원곡은 페루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Daniel Alomias Robles)가 잉카의 토속음악을 바탕으로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José Gabriel Condorcanqui Noguera)'의 테마 음악이다. 그는 이 음악 속에 스페인 정복자의 무자비한 칼날을 피해 최후의 은거지인 마추픽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잉카 인들의 슬픔과 콘도르칸키의 운명을 표현해 냈다.
마추픽추를 연상케 하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노랫말의 멜로디는 '엘 콘도르 빠사'를 닮았지만 사실은 잉카인들의 정서와 많이 다르다. 참고로 그들이 부른 노랫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러하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 Yes, I would / If I could / I surely would /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 Yes, I would / If I only could / surely would / Away, I'd rather sail away /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 /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 / Its saddest sound /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 Yes, I would / If I could / I surely would /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 Yes, I would / If I only could / I surely would
달팽이가 되느니 차라리 참새가 되겠어요 / 네, 그럴 거예요 / 만약 그럴 수 있다면 /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다 / 못이 되느니 망치가 되고 싶어요 / 네, 그러고 싶습니다 /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다(이하 생략)
마추픽추 정상에서 바라본.. 우리가 함께 힘들게 걸어왔던 우르밤바 강 옆의 기찻길이 보인다.
하니가 잉카트레일이 끝날 무렵 목놓아 펑펑 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잉카인들의 가슴속에도 남모를 회한이 깃들었을 것이다. 그게 콘도르(El Condor) 혹은 꼰도로 표현된 것이랄까.. 언급한 원곡의 노랫말은 이러하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히 바람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 주오.
콘도르(condor)’는 잉카어(케츄아)로 ‘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의 새 이름으로,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알려졌다. 잉카 사람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사상을 믿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잉카 사람들은 거대한 크기의 독수리(콘도르)를 통해 축제를 벌이곤 한다. 우리는 지구촌에서 가장 깊은 계곡의 꼴까까뇽(Canyon del Colca)에서 실제로 콘도르를 마주친 적 있다.
오늘날에도 페루 사람들은 안데스를 배경으로 매우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삶을 통해 우라의 정서와 한이 담긴 아리랑의 곡조와 닮은 정서가 가슴 깊이 배어있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특정인을 얕잡아 '철새'라고 비아냥 거린다. 어디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사람들.. 그중에는 몹쓸 정치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철새의 본 뜻은 번식지와 월동지를 해마다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새를 지칭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며 언제인가 어디론가 철새처럼 떠나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
마추픽추 정상에서 바라본 잉카제국의 심장은 뼈대 만 앙상하게 남았다.
공중도시를 건축할 때만 해도 부와 권력을 누리며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환상이 철새가 버린 둥지처럼 변했다고나 할까.. 위대한 건축물 앞에서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철새가 떠나며 남긴 텅 빈 둥지들.. 그렇지만 잉카인들이 늘 그리워하며 가슴에 품었던 성지 마추픽추..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히 바람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 주오.
마추픽추 정상에서 내려다본 우르밤바 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하니와 함께 잉카트레일 마지막 날 함께 걸었던 길.. 기진맥진 우리를 보듬어 준 품에 안겼다. 이날 하니는 호텔에서 곯아떨어진 후 피곤을 떨쳐냈는지 환하게 웃었다. 잉카사람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나라에 발을 디딘 것이다.
우리가 남긴 사진첩 속의 인증숏
세월이 꽤 많이 흐른 다음 우리는 다시 철새가 되어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을 오가며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까마득한 시간 저편에서 힘이 들어 부어오른 내 모습을 보니 철새의 삶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라잡이가 되어준 가이드와 헤어질 시간, 그는 또 어디로 날아갔을까..
마추픽추의 배후 도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에서 이곳까지 도착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북미로 이동한 다음 다시 중미와 남미까지 이어지는 여정 끝에 마주친 마추픽추..
우리네 삶도 이 같은 철새의 여정을 쏙 빼닮지 않았을까.. 마추픽추에서 내려단 본 우르밤바 계곡과 강물이 쉼 없이 흐른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강.. 우리는 저 강을 따라 정상에 서 있다. <계속>
Un vecchio ricordo di un viaggio in Sud America_Machu Picchu
Il 11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