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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3. 2023

이탈리아, 졸고 자빠진 바닷가 풀꽃

-BARLETTA, 5월을 맞이하는 우리 동네 풍경


우리들의 추억이 주저리주저리 영근 땅 바를레타..!!


   서기 2023년 4월 22일 토요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이틀 전에 다녀온 바닷가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바를레타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고 바로크 시대에 건축된 집들이 여전한 곳으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우리가 피렌체서 이곳으로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바닷가의 어촌 정도로만 여겼던 도시인데 막상 짐을 풀고부터 전혀 사정이 달랐다. 


도시의 크기는 비교적 작았지만 구도심을 비롯한 도시 전체는 이탈리아 여느 도시보다 모자라지 않았고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관련 포스트에서 무수히도 언급한 이 도시의 장점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신앙심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시민의식이라고나 할까. 이틀 전 하니와 함께 걸었던 바닷가 언덕을 다녀오면서 지난해 이맘때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집을 나서서 바닷가로 가는 골목 어귀에 눈에 띄는 숫자가 보인다. 1693.. 건물의 주춧돌에 새겨진 연도를 참고하면 아직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오래된 도시이다.



맨 처음 만나는 골목길을 나서면 바를레타 두오모의 종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닷가로 가는 길은 두어군데 있으나 이 길을 자주 이용한 편이다.



두오모 곁으로 이동하면 저만치서 바를레타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오모 정문을 지나치면서 지난해 이맘때 <꽃양귀비 풍경과 바꾼 주차 딱지_-하니와 함께한 4월의 바를레타 평원의 꽃잔치> 편에 써 두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우리는 거의 매일 함께 다녔으므로 혼자 걷는 시간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랄까. 당시를 회상하면 이러하다.



꽃양귀비 풍경과 바꾼 주차 딱지


   꽃양귀비가 빼곡한 이곳까지 오는 여정은 이랬다. 하니와 나는 지난 4월 15일과 16일 이틀 연거푸 시내 중심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바를레타 평원을 봄나들이 삼아 다녀왔다. 집에서부터 바를레타 평원을 돌아온 시간은 대략 5시간이 소요됐다. 거리로 따지면 15km 남짓하다. 그러니까 이틀 동안 우리가 걸었던 거리는 대략 30km로 돌아오는 길은 파김치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무엇이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청춘 때는 잘 몰랐던 체력이 안 청춘을 맞이하면 수고가 따라다닌다. 



우리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이곳에서 대략 1.5km 더 걸아가면 바를레타 시내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때 만난 꽃양귀비 세상.. 이틀 연거푸 바를레타 평원으로 나온 이유 중에 하나는 두 해 전 하니와 함께 만났던 꽃양귀비 밭을 찾고 싶었다. 희한한 일이다. 그때 다녀온 장소는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딴 장소에서 꽃양귀비 밭을 만났던 것이다.



꽃양귀비가 빼곡한 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전 농부의 질문이 무색하다. 꽃들은 이미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붉은 꽃양귀비는 어느덧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고 열매들이 빼곡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곳 꽃양귀비 밭에는 농사를 짓지 않은 곳이었다. 만약 밭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려본들 작물이 제대로 자랄 리 없어 보이는 밭떼기.. 이곳 바를레타에 살면서 터득한 정보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웬만큼 작은 경작지는 그냥 풀꽃들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어느덧 바를레타 항구 곁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바라본 풍경이 발길을 재촉했다.



바닷가 오솔길을 따라 풀꽃들이 떼창을 부르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추억을 이어간다.



풀꽃들의 세상.. 나는 여태껏 살면서 이런 세상을 처음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가 어느덧 햇수로 4년째가 되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하니는 창궐하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두 번 피신을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열심히 그림 수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짬짬이 산책 겸 운동 삼아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니는 동안 정이 들대로 든 곳.



우리는 어느덧 이곳이 고향(조국) 같은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 이탈리아에서 뿔리아 주(Regione Puglia)가 주는 풍요로움은 여느 도시와 달랐다. 도시인들과 시장경제의 빠듯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곳. 도시 중심에는 시민들이 붐비지만 그들 또한 여유가 넘친다. 많은 것을 소유해서 풍족한 게 아니라 욕심이 없는 사람들.



어느 날 생면부지의 동양인을 만난 농부 아저씨가 우리를 왜 궁금하게 여겼을까.. 농사도 안 짓는 버려진 땅에 빼곡하게 피어있는 꽃양귀비 밭에 그냥 "네, 들어가도 돼요"라고 허락을 해도 될 텐데 꼬치꼬치..ㅎ 그러거나 말거나.. 하니와 나는 잠시 꽃양귀비 삼매경에 풍덩 빠진 채 잠수를 타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풀꽃들..



우리가 태초 이후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이 이런 곳이 아닐까..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려있고 빼곡한 곳..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이나 외로움 또는 진정한 박탈감은 대자연으로부터 무한 멀어지면서 생긴 일종의 정신병 인지도 모를 일이다. 떼창을 부르는 꽃양귀비만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에 환한 등불이 켜진 느낌은 물론 알 수 없는 오르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다.



바닷가에 시설된 간이 축구장을 점령한 샛노란 풀꽃들이 오후 햇살에 졸고 자빠졌다.



언제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 세상에 이런 곳도 있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첩을 열어놓고 포스트를 편집하는 동안 농부 아저씨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날 아저씨는 꽃양귀비 밭 곁에서 어슬렁 거렸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곳을 떠나면서 인사를 건네고 떠나긴 했는데.. 글쎄,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니 농부 아저씨가 이곳에서 일거리를 찾을만한 곳이 못되었다.




발아래 눈에 보일락 말락 한 앙증맞은 풀꽃들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


"(와글와글) 안넝하떼요. 아더찌~~~ㅋ"



저만치 조금 전에 지나친 두오모의 종탑이 보인다. 그런데 바닷가를 스 놓은 풀꽃들 가운데는 졸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졸고 자빠진 모습들.. 



오래전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가운데 박장대소할 장면이 있었다.



엄마 앞에서 식탐을 하던 녀석이 입안에 음식을 잔뜩 문채로 졸다가 옆으로 자빠지는 게 아닌가..



그때 녀석은 화들짝 놀래며 졸린 눈을 하고 다시 음식을 씹어댄다. 그리고 찌질댄다. (ㅋ.. 지가 혼자 졸다가 자빠지고 찌질대긴..ㅋㅋ) 하여튼 순수한 녀석들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다.



바닷가를 서성인 시각은 오후 4시 반 경으로 이날 볕은 따사로웠다.



볕이 강하여 좋은 사진을 찍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모처럼 바닷가로 나와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을 더듬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자 낼모레면 5월이 다가온다.



바를레타 항구(내항) 곁으로 가는 길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운 흔적을 다시 만났다. 돌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박고 꽃을 피운 녀석들.. 하니와 나는 바를레타 곳곳에 발도장을 찍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짬만 나면 싸돌아 다니곤 했지..



이곳 바닷가도 그중 한 곳이다. 바람이 살랑거렸다. 상큼한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



귀갓길에 만난 오래된 다육이 고목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 오던 길을 따라 두오모 앞으로 발길을 돌린다. 언제 봐도 뛰어난 건축물이자 조각작품들..



바를레타서 꽤 분위기 있는 리스또란떼로 해 질 녘이면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바닷가에는 풀꽃들이 졸고 자빠졌지만 이곳은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잠시 둘러본 우리 동네의 낯익은 풍경들.. 



아무래도 혼자 걷는 길은 둘만 못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I fiori dell'erba sulla spiaggia di maggio_La disfida di Barletta
Il 22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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