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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05. 2019

생애 처음 만난 양배추의 늦가을

-미치도록 너를 닮고 싶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지난 11월 28일 오전 9시경 아침 운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이날은 먼 코스를 택하여 조금 힘들었지만 평소 가 보고 싶었던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갈대가 하얀 솜털을 나부끼고 있는 곳이어서 사진에 담고 싶었다. 흔치 않은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갈대밭 근처로 이동해 보니 생각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잡을 수 없었다. 따라서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이동해 봤다. 


나는 그곳에서 놀라운 풍경을 만난 것이다. 생애 통틀어 처음 만난 환상적인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것 같은 양배추밭에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양배추를 만난 것이다. 이들은 곧 다가올 겨울채비를 하느라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차림으로 보아 먼 길을 떠나는 게 틀림없었다.



우리도 언제인가 가을이 오시면 먼 데로 떠날 차비를 해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대자연의 운명 앞에서 순응하며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것. 어느 날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수의를 펴 놓고 한숨을 쉬고 계셨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대략 10년 후 할머니는 수의를 입으시고 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펑펑 목놓아 울었다.



어느 날 배추밭에서 만난 양배추를 앞에 두고 우리네 삶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풍경 앞에서 기분도 좋았지만, 늦가을이 던지는 메시지를 거부할 수 없었다. 우리는 먼 길을 떠날 때 누군가 입혀주는 수의를 입게 된다. 수의의 색깔은 무덤덤한 단색이며 주로 자식들이 어른들에게 효도선물로 드렸다. 참고로 수의(壽衣)에 대해 알아보면 이러하다


수의는 부모의 환갑·진갑이 가까워지면 가정형편에 따라 수의를 지어두기도 하며, 형편이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상을 당한 후 기성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3년마다 돌아오는 윤달에 수의를 짓는 관습이 있는데, 윤달은 공달이라 하여 죽는 사람의 평안을 축복하는 뜻에서 지어지며 그 풍습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부모의 수의를 만들 때는 효를 다하기 위하여 윤달 가운데 길일을 택할 뿐만 아니라 팔자 좋고 장수한 노인들을 모셔다가 바느질을 하였는데, 솔기 중간에 실매듭을 짓지 않게 하여 저승길을 갈 때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가기를 염원하였다. 
또한 치수나 폭 수에 있어서도 짝수로 하지 않고 홀수로 하였다. 수의의 형태는 생전 예복과 같은 길복(吉服)으로 하며 치수는 생전의 옷보다 크고 넉넉하게 만든다. 옷감은 공단(貢緞)이나 명주(明紬) 같은 견직물과 모시·삼베[麻]등을 사용하는데, 빨리 썩는 것이 좋다고 하여 모시나 삼베[麻布]를 많이 사용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가만히 따지고 보면 수의는 오래된 관습에 의한 것일 뿐 별로 의미가 없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수의는 중부님이 선물하셨다. 미리 수의를 장만해두면 장수할 것이란 세간의 믿음 때문이었다. 인간 세상의 일은 주로 이러했다. 그런 반면에 식물들의 세계는 수의 대신 곱디 고운 단풍을 입는다. 내가 만난 화려한 양배추도 단풍이 든 것이다. 화려하게 수놓은 단풍은 곧 저승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숙연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그럴 게 아닌가..



육신은 산 자의 몫이다. 우리가 말하는 내세의 존재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어떤 종교가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해도 결과는 동일했다. 사후 세계를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사례도 없었다. 오죽하면 '하느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예수 조차 33년 밖에 살지 못했을까. 



당신의 죽음에 따르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할애비라도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되짚어 보면 '죽음의 미학'을 통해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제한된 삶을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며 살다가 어느 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먼 길을 떠나라는 대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양배추의 일생을 통해 나를 뒤돌아 본다. 미치도록 너를 닮고 싶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E VERDURE FANTASIA_IL CAVOLO
il 28 Novembre,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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