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2. 2019

돼지 껍데기의 눈부신 진화

-또 돼지 껍데기

자나 깨나 돼지 껍데기 조심..!!


서기 2019년 12월 11일 수요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날씨는 엉망진창.. 비 뿌리다 멈추고 바람 불고 바닷가는 겨울 날씨처럼 변하다. 손은 시리고 춥고.. 한 사나흘 반짝 봄 날씨를 보이더니 변덕이 개죽끓는 듯하다. 이런 날씨는 애주가들의 전설 속에서 오롯이 고개를 내미는 돼지 껍데기 날.. 귀갓길에 마트에 들러 아삭아삭 씹히는 빵가루와 감자튀김과 돼지 껍데기를 사 왔다. 돼지 껍데기의 눈부신 진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위 자료사진은 아침운동을 나서서 만난 바를레타 외항 방파제에서 만난 바다의 풍경이다. 큼지막한 물결이 뭍에 닿자마자 파도를 일으킨다. 화가 단단히 난 녀석들이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오래전 잠시 반짝했다가 사라진 썰렁 개그를 떠올리며 속으로 씩 웃었다. 썰렁 개그는 이랬다.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두 녀석이 산길을 가면서 나눈 대화이다. 두 녀석 중 한 녀석은 잘난 체 하는 넘이다.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제 자랑만 늘어놓는 넘.. 그와 동행하는 한 녀석은 정반대의 인물로 사람들은 그를 일러 "얼빵하다"라고 말했다. 얼빵이 와 잘난 넘이 어느 날 동네 뒷산 산길을 걷는 가운데 얼빵이가 전봇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잘난 넘아 조오기(저기) 전봇대에 쓰인 글자가 무슨 뚯이야?

-그것도 모르나 얼빵아.. 조건(저것은) <전. 봇. 대>라고 쓴 글자야.



길을 조금 더 걸어가자 전봇대에 글자가 네 자나 쓰여있었다. 얼빵이는 잘난 넘이 모를 줄 알고 다시 물어봤다.


-잘난 넘아 조오기 쓰인 글자는 무슨 뜻이야?

-에고 얼빵아.. 조건 <또 전. 봇. 대>란다. 으쓱~


얼빵이는 신기했다. 확실이 잘난 넘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얼빵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에는 석자도 아니고 넉자도 아닌 무려 여덟 자의 글자가 전봇대에 쓰여 있었다. 얼빵이의 공격은 성공했을까..



-잘난 넘아 조오기 쓰인 글자는 무슨 뜻이야?

-아고고 얼빵한 것 같으니라고.. 조건 <오나가나 전. 봇. 대>라는 거야. 공부 좀 해라 공부!!




요즘은 흔히 볼 수 없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광고 문구를 전봇대애 붙여 주의를 환기시켰던 일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학교나 관공서에서 글짓기나 표어를 만들게 하여 상을 주던 흑백영화 같은 시대였다. 얼빵이 와 잘난 넘은 전봇대에 붙여놓은 표어를 보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표어의 주제는 '불조심'이었다. 맨 처음 본 표어는 <불조심>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본 표어는 <산불조심>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표어는 <자나 깨나 불조심>이었다. 썰렁 개그를 동원한 건 돼지 껍데기의 눈부신 진화를 돋보이게 하는 사전 광고나 다름없다. 



이날 사온 빵가루는 꼬지에 찔러둔 돼지 껍데기를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약간은 물컹한 느낌의 껍데기에 반전을 주는 식감을 주기 위함이다. 빵가루는 매우 아삭 거리며 입안을 천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꼬지에 끼워둔 대파 조각은 매콤한 맛을 풍기며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이 리체타는 브런치 이웃들이 제공한 '돼지 껍데기 맛의 비결'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돼지 껍데기 요리 시리즈

돼지 껍데기의 눈부신 진화
차고 음산한 날씨에 찾게 되는 음식
돼지 껍데기 요리의 끝판왕



위 자료사진 두 장은 남아있던 돼지 껍데기를 접시에 마저 담아 빵가루와 쓱싹 비벼먹다가 남긴 기록이다.


이날 돼지 껍데기는 간을 하지 않고 삶았으므로 감자튀김을 곁들였다. 꼬지를 한 입 물고 감자튀김을 입에 넣고 씹으면, 아삭 거리며 약간은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오늘처럼 바람맞아 추워진 날씨에 소주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비노 비앙꼬와 곁들이면 기막힌 궁합을 이룬다. 이 같은 맛을 장문의 표어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오나가나 돼지 껍데기 조심!!! 씩~^^"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COTEANNA DI MAIALE CON PANGRATTATO
il 11 DIcembre 2019, Citta' di Barletta PUGLIA
Piatto 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눈이 건강하면 세상이 아름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