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지구별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니..!!
내가 '여행자의 천국'이라 이름 붙인 엘 찰텐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심지어 작은 돌이나 풀까지 모두 다 사랑스러운 것이다.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모든 사물을 그저 그렇게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바람 한 점에 조차 의미를 부여하면 그건 천사의 입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만의 방법으로 상대를 평가하게 된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아니며 호불호 또한 아니다.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사물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면,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무감각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불감증의 카테고리에 묶어(?) 놓는다. 조물주로부터 똑같은 오감을 부여받았지만 쓰임새가 서로 다르다고나 할까..
학창 시절에 읽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한 성자의 삶을 통해 나타난 신비스러운 현상이 한몫 거들었다. 그는 어디를 가나 후광이 따라다녔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향기가 진동했다. 뭇새들이 동행하고 동물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이른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어느 날 영적 깨달음을 통해 나환자 촌에서 그들과 함께 기거하는 것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는 하인들을 풀어 프란체스코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나환자들로부터 격리시켜 집안에 가두지만 그의 결심을 꺽지 못했다. 그는 호시탐탐 집안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다시 가출을 한 것이다. 이른바 출가를 한 셈이며 세상의 삶을 등진 것이다.
나는 그의 삶을 통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니 쏟았다. 당시 내 책상 앞에는 바이블이 놓여있었는데 바이블이 눈물에 흥건히 젖을 정도로 감동을 받은 것이다. 당시의 감동에 힘입어 성경 66권 통독에 들어갔다.(이하 생략) 이런 일을 겪은 후 이탈리아에서 만난 지인들은 나의 이탈리아 이름 '프란체스코'를 왜 어떻게 선택했는지 등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당시 읽고 감동 감화된 책 내용을 유창하게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입만 열면 책 내용이 줄줄 읽혀 나오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인들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아주 능통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었다.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 쓰듯이 내 생각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꽤 길게 끼적거린 독후감 이야기가 오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잠시 생각해 보시라. 사람이 걸음을 옮기는데 향수를 떡칠한 것도 아니건만 어떻게 향기가 진동할 것인가.. 누군가 등 뒤에서 플래시를 비추는 것도 아닌데 후광은 어떻게 따라 다닐 것인가.. 뿐만 아니라 온갖 육축과 뭇새들은 먹이도 주지 않는 프란체스코 뒤를 왜 맨날 졸졸 따라 다니겠는가.. 이게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한 성자의 삶을 뻥 튀겨 신흥종교의 교주로 만들기 위해 지어낸 말일까.
프란체스코는 처음부터 교황청이 인정한 성자가 아니었다. 그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 하자 교황이 그를 불러 축복을 한 것이다. 이를 테면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형식에 얽매인 교황청의 정치적 태도는 물론, 겉으로만 신을 섬기는 바리새인을 닮은 주일 신자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는 이미 삶을 초월해 있었으며 일거수일투족 조차 보통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당신을 이 땅에 보낸 하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풀꽃에 눈을 맞추면 풀꽃이 기뻐하며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향해 손을 내밀면 새들이 즉각 그의 손에 날아와 입을 맞춘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나환자들과 포옹을 하기도 하고, 숲에 들어서면 온갖 동물들이 그를 따라나서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신비스러운 현상이 어디서부터 발현되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영성훈련은 나의 본심을 불러내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증폭시키게 된 것이다. 나의 브런치에 실린 수많은 사진들은 그렇게 해서 촬영된 것이라 보면 된다. 내가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피사체들이 "저요 저요"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랄까.
사정이 주로 이러했으므로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아내가 앞서 걷게 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우리가 여행자의 천국 엘 찰텐에 발을 디딘 후부터는, 그 정도가 심하여 갈 길 바쁜 나의 걸음을 자꾸만 붙드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일출 장면 때문이었다. 그 빛은 비에드마 호수 저편으로부터 엘 찰텐 산기슭을 비추고 있었다. 산등성이 너머에 태양이 이미 떠올랐지만, 우리가 걷는 산길에는 서광만 비치는 것이다.
서두에 잠시 언급한 불감증과 안 불감증(?)의 차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들었다. 어쩌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출 장면 하나를 놓고 침소봉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자에게 그에 걸맞은 답답한 풍경을 안겨줄 것이며, 모든 것에 아름다움을 입히면 하늘은 그에 걸맞은 선물을 내리게 될 것이다. 어느날 아침 그곳에 가면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물론 내 느낌일 뿐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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