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4. 2020

엄마와 아내의 김치 맛 차이

-세계최고의 발효식품 김치에 부침

동서양의 재미있는 발효식품 차이..!!



  브런치를 열자마자 처음 만나게 되는 자료사진은 잘 발효된 살라메(Salame_이하 식품 등의 표현은 '이탈리아어 발음'으로 표기함)의 완제품으로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 한 식품회사에서 만난 명품이다. 살라메는 살루메(Salume)의 일종으로 잘 다진 돼지고기에 라르도(il Lardo)와 에르바, 알리오 뻬뻬 등을 섞은 살사 잘 배합한 후 염지하여 발효한 식품이다. 



요리학교에서 현장 체험학습으로 만나게 된 라 까사라(La Casara)에서 살라메뿐만 아니라 포르맛지오(Formaggio) 등 발효식품을 만드는 공정은 물론 완제품을 둘러보고 시식까지 한 것이다. 이곳만 둘러봐도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대표 발효음식 전부를 다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쁘로슈또(Il prosciutto)와 살라메는 물론 포르맛지오와 같은 동물성 발효식품을 애용하며 선호해 왔던 것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오늘날 이들 발효식품은 이탈리아와 유럽을 넘어 세계인들이 즐기는 식품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과 영양면에서 뛰어난 발효식품을 세계인들이 알게 되면서 관련 업계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품질관리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 현장체험학습에서 만난 이 업체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곳저곳 이탈리아의 발효식품을 만드는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이들 식품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이곳에 둥지를 튼 후부터 줄곧 어딘가 늘 허전한 구석을 발견하곤 했는데.. 알고 보니 잠시 잊고 산 우리나라의 대표선수이자 지구별 최고의 발효식품 김치가 빠졌던 것이다. 그래서 짬짬이 눈팅만 해 오던 아내의 김장김치 담그는 사진을 소환해 허전함을 달래보기로 한다.





우리에게 낯익고 익숙한 배추


세상 참 좋아졌다. 샛노란 배추속을 사진에 담아 브런치에 올려놓고 보니 아삭아삭 베어 물던 생각이 절로 난다. 그냥 먹어도 좋고,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양념장에 버무려 겉절이를 해서 먹으면..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배추 맛.. 글쎄 이런 배추가 동물성 발효식품을 잘 만드는 이탈리아에서 찾기 힘들다는 건 우리 교민들만 알 것이다. 굳이 배추를 구매하려면 중국식품점에 들어 못생긴 배추 몇 포기로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그런데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가끔은 배추 파동이 있긴 했지만, 배추에 관한 한 지천에 널린 채소이며 김장 때가 되면 여기저기 난리가 아니다. 겨우내 먹을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 하지만 이 같은 풍경은 예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요즘은 먹거리가 다양해졌고 김치 보관도 쉽다. 그러나 시계를 대략 40~50년 뒤로 돌려보면 그곳이 비루스 진단키트의 끝판왕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것이다. 그 현장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난다.



우리 집 6070 김장김치 담그던 날


우리 집은 종가였다. 조금 부풀리면 연중 제삿날이나 다름없는 종갓집. 맏며느리인 어머니께선 평생을 부엌에서 벗어나질 못하셨다. 어머니만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부엌은 사내들(7남매)이 우글거렸던 우리 집안의 유일한 출입금지구역이었다. 사내가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으면 농산물(?)이 떨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속설이 함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니라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법도는 반드시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종가만의 법도가 아니라 사내와 계집의 일을 철저히 구분해 오던 유교적 관습이 종갓집에 서려있었던 것. 


그러나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예외는 있는 법이랄까. 김장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나의 기억에 따르면, 어릴 적 우리 집에서 담은 김장김치는 대략 200 포기 정도가 되는 것으로 두 접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유년기에 만난 배추는 산더미처럼 뒤뜰에 쌓였다. 어머니께선 그 많은 배추를 일일이 다듬고 소금 간을 하는가 하면 배춧잎은 따로 엮어 시래기로 사용했다. 어디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는 것. 


배추가 다 절여지면 그때부터 신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형제들과 함께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위치한 산골짜기로 절여진 배추를 리어카에 실어 나르는 한편 그곳 맑은 냇물에 잘 헹군 배추를 다시 집으로 나르는 것이다.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오르내린 언덕길에서 타 본 리어카는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침내 금남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가마솥이 걸린 부엌의 숯불에 손을 녹이는 것이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꽁꽁 언 손을 어머니께서 잡아주시는 것만 해도 황송했던 시절이었다.



도시락 반찬과 친구 집 김치 맛은 달라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 줄 모른다. 그러나 유년기를 돌아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다. 김치를 담글 때는 숙모와 이웃이 품앗이를 했다. 양지바른 곳에 돗자리를 펴 놓고 하루 종일(?) 김장김치를 버무려 담는데 이때 사내들이나 아버지께서 하는 일은 따로 있다. 김장독과 무를 묻을 언 땅을 파고 짚단으로 덮는 일을 도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장 담그는 구경밖에 없었다. 


이렇게 담은 김치는 겨울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상 위에 올랐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도시락 반찬까지 김치 투성이었다. 이런 사정은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 가야 할 중고등학교 때까지 교실 안은 김치 냄새에 쪄들다 못해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열라 하신다. 김치가 발효를 거듭하면서 남긴 흔적이 창밖으로 사라질 때쯤, 나는 우리 집의 김치와 다른 아이들의 김치 맛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 김치가 짠맛이 도는 반면 친구의 김치는 보다 더 달콤하며 별스러운 맛이 났던 것이다. 7남매와 남매가 살고 있는 집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친구의 어머니는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 오신 분으로 부산에서 담그는 김치와 다른 맛을 보였다. 보다 경제적인 짠김치를 담그셨던 우리 집 김치와 맛이 달랐던 것이다. 이때부터 철없는 나의 투정이 시작되는 것. 돌이켜 보면 7남매 키운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거기에 김치 투정까지 더했으니 어머니 속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여기도 김치 저기도 김치 어디를 가나 김치


요즘은 김치가 별미로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세상이 좋아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김치 종류만 해도 부지기 수이다. 배추김치는 물론 총각김치, 파김치, 물김치, 겉절이, 깻잎김치, 양배추 김치, 동치미 등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며 지방에 따라 종류와 맛이 제각각이다. 앞서 잠시 돌아본 이탈리아의 발효식품은 몇 안 되는 동물성 발효식품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식물성 발효식품은 가히 발효식품의 끝판왕이라도 불러도 좋을 것이다. 


동서양의 발효식품 차이를 도드라지 게 만드는 한국의 김치.. 그래서 쁘로슈또 혹은 포르맛지오가 이탈리아 발효식품 대표선수라면 한국의 김치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발효식품으로 불러야 옳을 것이다. 이유가 있다. 우리 선조님들은 야채(배추)가 잘 발효될 수 있도록 고춧가루와 마늘 등을 사용한 것이다. 



김치를 특별하게 만드는 식재료 고추


우리나라 김치의 가장 큰 특성은 김치에 고추가루를 버무려 섞는 것이라고 하겠다. 고추는 비타민 C 함유가 매우 많아 사과의 50배, 밀감의 2배에 이른다고 한다. 또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켑사이신(Capsaicina)와 고추에 많이 함유된 비타민 E는 비타민 C의 산화를 막아주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우리 민족은 기나긴 겨울 동안 부족되기 쉬운 비타민 C를 김치를 통해 섭취할 수 있었던 것. 또 새우젓, 조기젓, 멸치젓 등을 이용한 김치는 전혀 새로운 발효 김치 세계를 만들어 낸다. 



누구나 아무나 어느 때나 만들 수 있는 마법 같은 식품


이렇게 만든 김치는 사계절 내내.. 어느 곳으로 가든 만날 수 있고 음식이 필요한 곳이면, 아무 때나 누구로부터도 제공되는 매우 편리하게 공유하는 식품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김치는 주재료로써 뿐만 아니라 부재료로 사용된다. 예컨대 부침개를 부치거나 찌개를 끓일 때 넣으면 군 냄새와 잡냄새를 잡아주고 김치의 특유한 맛을 고스란히 살려주는 마법 같은 식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김치에 관한 보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발효식품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특정 기업에서 생산되고 관리되지만, 우리나라 김치는 생산부터 유통이며 맛까지 거의 동일하며, 전 국민이 김치 담그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라도 김치를 담글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엄마와 아내의 김치 맛 차이 


그렇다면 본문의 제목에 등장한 아내와 어머니께서 담그신 김치의 맛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놀라지 마시라. 오늘 작성한 포스트의 제목은 김치를 세계화 특성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잣대인 것 같다. 세계인들이 서양의 동물성 발효식품을 쉽게 따라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선수 식물성 발효식품 김치는 누구나 쉽게 따라 만들 수 있으며, 맛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연할 수 있는 기막힌 식품인 것이다. 


아내가 정성껏 담근 김치맛이 엄마가 담근 것과 큰 맛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도 이같은 이유라 생각한다. 또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그 누구가 담근 김치라 할지라도 같거나 비슷한 맛을 볼 수 있는 것.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께서 7남매를 기르시지 않았다면, 얼마나 맛깔난 김치를  담그셨을까.. 아내가 담은 맛깔난 김치맛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절로 그리워진다. 김치 때문이다.


세계인들이 비루스 사태(COVID-19)를 겪으며 한국의 진단키트와 대응방식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것처럼, 김치 담그는 리체타를 익히는 순간부터 최고의 맛과 영양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괜히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며 우왕좌왕하지 말자. 우리 한민족이 잘 키워낸 똑똑하고 잘난 대표선수 하나만으로도 국위선양은 따 놓은 당상! 누가 당신더러 "한국인이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시라. 


네 맞아요. 김~치!~ ^^



Differenza tra gusto GHIMCI tra madre e moglie
il 14 Magg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마약 막국수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