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내를 유혹한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사람들이 무엇을 그리워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아마도?!!
나의 브런치를 열면 맨 먼저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에 속한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Margherita di Savoia)해변의 모습이다. 아내와 함께 좋아한 이 해변은 바람이 잠잠하여 바다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진공상태를 방불케 했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작품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다.
주지하다시피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미술사의 대표적인 인물로 1904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형이 있었지만 형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은 당신의 아들이 환생한 것으로 믿고 형의 이름을 그대로 지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이들 가족사에 드리워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의 어머니는 살바도르 달리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생겼다. 그의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동생.. 그러니까 처제와 다시 결혼을 하게 된다. 평소에 존경하던 이모가 졸지에 계모로 선택되자, 그는 아버지와 잦은 충돌을 빚었다고 전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학교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여 퇴학을 당하고 평소에 존경하던 피카소(Pablo Picasso)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피카소의 영향을 받고 입체파의 작품을 남기게 된다. 이 무렵 달리는 초현실주의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기존의 합리적 사고방식에 따른 개념이나 회화적 양식을 거부하고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작품 활동을 해 나갔다.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작품들이 그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1931년에 그린 <기억의 고집_La persistenza della memoria>이란 작품에 등장한 사물들은 흐느적거리거나 녹아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매우 난해한 작품이다. 누군가 이 작품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작가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작품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의 작품이 어떤 환경에서 적합한지 남미일주 여행에서 만나게 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달리는 우유니 사막에서 이런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우유니 사막에 갇힌 태곳적 풍경은 용납은 했지만 달리의 작품은 쉽게 곁을 주지 못했다. 내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첫눈에 무조건 나를 만족시키거나 유혹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에 뒤섞인 정치와 종교 철학 등은 나의 관심으로부터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미술의 사조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두었던 그림 혹은 조소 등에 대한 생각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들짝 깨어난 것이다. 아내와 함께 아침나절에 만난 바닷가 풍경 때문이었다. 아침햇살에 비친 아드리아해의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해변의 풍경을 보는 순간 갑자기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떠오른 것이다. 별로로 여겼던 작품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를 얻고 뷰파인더를 자극한 것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초현실적 풍경이 오롯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박제된 곳.. 사랑한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죽기 전에 달리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그의 형을 알고 있었을까.. 그가 정말 환생한 것이라면, 지금 그가 바라보거나 느낀 세상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마주쳤던 풍경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머니가 유언처럼 남겼을 형에 대한 그리움이 당신을 꼬드겼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옳거나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니 그곳에 그리움이란 존재가 한 예술가를 자극했을 개연성이 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형의 영혼을 입고 태어나지 않아도, 형이 환생한 개체가 아니어도, 그는 특정한 공간에서 머물면서 느낀 작품을 남겼을 지도 모르겠다.
위 자료사진 뒤로 오밀조밀한 건축물들이 위치한 곳이 우리가 살고있는 바를레타 시의 모습이다. 시내 중심으로부터 대략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해변이 위치해 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소환해 준 참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이다. 바닷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그리고 보니 인류의 기원설에 등장하는 바다의 모습은 생명을 잉태한 원시의 공간이었다. 현생 인류의 DNA 깊은 곳에 숨어든 그리움이 여전히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고나 할까. 우리는 이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속이 하얗게 바랜 느낌을 받으며 좋아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진공상태의 바다와 텅 빈 가슴.. 우리는 그곳에서 태초의 원시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내도 그렇지만 나 또한 바다가 점점 더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 날씨 탓 때문은 아니리라.. 우리는 언제인가 돌아가야 할 본향을 바다를 통해 그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그 바닷가에서..
il mare Adriatico che si è trasformato in vuoto
il 22 Giugn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