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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29. 2020

괜히 기분 좋아지는 풍경

#10 아내를 유혹한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괜히 기분 좋아지는 풍경


우리는 언제쯤 기분이 좋아질까.. 서기 2020년 6월 28일 일요일 오후 4시경,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아드리아해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집을 나서자 머리 짱백이 따끈따끈 하다. 누군가 머리 위에 난롯불을 켜놓은 듯한 날씨.. 도시는 텅 비었다. 



이런 날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고 놀고 자빠졌는지 단박에 안다. 우리가 사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시민들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6월 초부터 바캉스 시즌을 열고 있었다. 두어 달 동안 방콕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청춘들은 삼삼오오로 바다로 몰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집에서 가까운 바다로 바다로 훌러덩훌러덩.. 아드리아해는 해수욕객이 나른 알록달록한 비치파라솔이 짙푸른 아드리아해의 바닷빛과 너무 잘 어울렸다. 우리는 바를레타 내항을 보호하고 있는 방파제 입구의 장의자를 찾아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곳에 앉으면 살랑살랑 바닷바람에 수면제를 흩뿌렸는지 바람이 불 때마다 눈까풀이 점점 더 무거워오는 곳. 온몸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이다가 청춘들이 바다를 나서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득한 시간 저 너머의 추억들이 이때부터 꼼지락 거리며 머릿속을 돌아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 


우리는 따가운 볕을 피해 종려나무 아래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헤아리다가 방파제 곁으로 나아갔다. 볕이 얼마나 따가운지 창이 긴 모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볕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사람들은 이미 바닷가에서 꽃으로 변해 바람에 흔들리거나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진수성찬_珍羞盛饌


반라의 사람들 속을 헤집고 다니는 두 사람.. 우리 차림은 이들에게 너무 낯설다. 슬리퍼와 반바지 반팔 차림의 소년과 긴소매의 소녀( 두 사람은 마음만..^^)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청춘들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방파제 위로 떠난 바캉스족들은 다이빙을 즐기고 해변으로 몰려든 시민들은 물놀이와 일광욕으로 빨갛게 익었다. 



방파제 위를 천천히 걷다가 들여다본 바닷속.. 아드리아해의 바닷물은 맑고 투명하여 속이 훤히 비친다. 그곳에서 보면 볼수록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을 만난 것이다. 큼지막한 물고기 떼들이 사람들을 피해 진수성찬을 즐기고 있었다. 녀석들은 누가 보거나 말거나 갯바위에 달라붙은 해초들과 부산물을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토끼의 간과 바닷가의 물고기들


이런 풍경들은 까마득한 옛날..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풍경이었다. 그 바다가 아내와 함께 거니는 방파제 길 옆으로 우리를 소환해 놓고 있는 것이다. 용왕님이 사는 나라.. 그곳에는 천년만년 살 것 같았던 용왕님이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 설화에 등장한 글의 제목은 <토끼의 간>이었다. 


사경을 헤매고 있던 용왕님은 간경화를 앓고 있었는지 주치의는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낫거나 살 수 있다고 말했지. 그래서 어벙한 신하 1인을 뭍으로 보내 토끼 간을 구해오라고 시킨 거야. 그 신하의 이름은 자라였다. 자라는 곧 토끼가 사는 산에 도착해 토끼를 꼬드기는 거야.



"토끼야 토끼야 이쁜 토끼야. 네가 우리 용왕국에 가면 검찰총장 시켜줄게. 대한민국을 말아먹을 정도의 벼슬이란 거 신문이나 봤니. 아니 브런치를 읽어 보기는 했니.."



맨날 풀잎만 뜯고 살던 토끼 민초는 이때부터 간덩이가 부은 거야. 독재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말아먹었다는 떡검의 소문은 익히 들었던지라 권력이 탐난 녀석.. 토끼는 결국 자라 등에 업혀 용궁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용궁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일이 생겼지. 한 신하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어.


당장 녀석의 배를 갈라 간을 끄집어 내..!!



화들짝 놀란 토끼.. 신의 한 수가 필요했다. 그제야 꼬드김에 빠진 것을 안 토끼는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며 즉각 대책을 마련했었지. 토끼의 잔머리 또한 떡검의 돌대가리를 쏙 빼닮았다. 우선 위기를 탈출해야 했다. 비록 권력에 잠시 눈이 어두웠지만 하늘은 토끼의 편이었다. 토끼 왈..!!



어허 간이 필요했다면 미리 내게 일렀어야죠. 간덩이가 필요하다고 말이죠잉..
자라가 그 말을 하지 않아 간덩이는 내가 살고 있던 집 냉장고에 놔두고 왔어요..!
아쉽게 됐구려!! ㅉㅉ



이때 재밌는 일이 발생한다. 용왕은 토끼의 말을 도무지 못 믿는 거야. 그러자 토끼는 치마를 걷어 밑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지.


“하나는 오줌 싸는 구멍, 하나는 똥 싸는 구멍, 하나는 간을 뺐다 들였다 하는 구멍이야. 봤니..? ”



아드리아해가 품은 용왕이 사는 나라


세상의 왕들은 생각보다 멍청했는지 토끼의 꼼수에 단박에 넘어간 거야. 그리고 토끼를 데려온 자라와 함께 다시 뭍으로 보낸 거지. 자라는 토끼를 업고 다시 산으로 돌아온 후 "간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어딨냐"라고 되물었다. 이때 여러분들이 토끼라면 뭐라 했을까.. "나 잡아 봐라~" 아니면 "엿이나 묵어 짜샤!!"라고 했을까. 



아내와 함께 땡볕 아래서 걷고 있는 방파젯길은 지난 2월 23일 아내가 바를레타로 오기 전부터 내가 개척해 둔 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아침 산책을 하기도 하고 망중한을 즐겼다. 그때 우리를 갈라놓은 시간은 대략 7개월 정도라고 브런치에 끼적거렸다. 그리고 희한한 일이 생겼다. 아내가 도착한 직후부터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인들이 비루스들 때문에 생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중국에 있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때였다. 참 아슬아슬한 때였다. 우리는 이때부터 이탈리아인들과 처지를 함께했다. 방콕 혹은 집콕으로 두어 달을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두어 달이 3년의 세월을 보낸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시에 느낀 감정은 용왕의 나라에서 탈출한 토끼나 다름없었을 것. 누군가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말했던가.. 



이날 오후 아드리아해는 바닷가를 찾은 시민들을 넉넉하게 품어주었다. 당신이 보낸 물고기 사신들은 그 풍경을 보며 용왕께 보고하기 바쁜 표정이었다. 뭍에 사는 사람들과 바다에 사는 물고기와 해초들이 평화를 되찾은 바다.. 그 바닷속의 물고기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 위에서는 땡볕이 쏟아지지만 유년기를 소환한 바다는 토끼가 느꼈을 간덩이처럼 시원한 풍경이다.


Un paesaggio che si fa sentire bene_la spiaggia dell'Adriatico 
il 28 Giugno 2020, 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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