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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05. 2020

여기서 딱 한 달만 살고 싶어

#15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가 궁금했다

하니는 왜 그곳에서 딱 한 달만 살고 싶었을까..?


   서기 2020년 7월 8일 오전 4시경, 우리는 뷔에스떼 해변이 잘 조망되는 언덕 위에서 잠을 깼다. 이튿날 저녁 하늘에 무수한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아드리아해로부터 무시로 바닷바람이 언덕 위로 불어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촘촘하게 박힌 별들.. 


그 별들은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별들이자, 상상력을 무한 확장하며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게 만든 별들이었다. 별들의 정체에 대해 형과 누나에게 물어봐도 잘 몰랐으며 엄마 아버지도 잘 모르셨다. 그렇다고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나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는 태양과 달과 샛별과 북두칠성과 사수자리와 전갈자리 등 몇몇 별자리를 아는 게 전부였다. 지난 여정 눈을 뜨니 반짝이는 샛별 편 서두에 이렇게 썼다. 


요즘은 풍경이 많이도 달라지거나 아예 흔적도 찾을 수 없이 변해버린 고향이지만, 최소한 몇십 년 전만 해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림 같은 풍경이 우리 곁을 늘 지키고 있었다. 아니 도시 속에서도 흔한 풍경이었다. 그 풍경들은 담벼락에 기대앉은 작은 아이처럼 가슴속에 오롯이 남아 고향땅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나 운명의 끈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리움이 얼마나 컸으면 일제강점기 때는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지었을까.. 이랬지!




고향의 봄                                     La primavera domestica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La mia città natale è una montagna in fiore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Fiore di pesco fiore albicocca azalee bimbo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Un quartiere pieno di fiori colorati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i manca il tempo che ci ho giocato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Villaggio fiorito nuovo villaggio La mia città natale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Quando il vento soffia da sud dei campi blu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Un quartiere dove salici piangenti danzano vicino al ruscello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i manca giocarci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Un quartiere pieno di fiori colorati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Mi manca giocarci




요즘 세대도 별로 다르지 않겠지만 당신을 낳아준 조국과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건 인지상정이지 싶다. 간혹 조국과 부모를 원수처럼 여기는 몇몇의 사람을 제외하면, 이런 습관들이 모여 언제 어디든지 여행을 떠나도 현지의 풍경과 고향땅을 부지불식간에 비교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서기 2020년 7월 8일 오전, 뷔에스떼 해변이 잘 조망되는 언덕 위에서 뷔에스떼로 향한 우리는, 마침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작고 아담하며 오래된 도시 속을 여명처럼 밝혔다. 아직 해돋이가 시작되지 않은 마을에는 인적이 없었으며 꽤 오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꿈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동네를 싸돌아 다니고 있는 기분이랄까.. 



여기서 딱 한 달만 살고 싶어


또 골목길은 테라스가 맞닿을 만큼 좁아 우리가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마을 사람들을 깨우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숨소리 조차 다 들릴 것 같은 아담한 동네.. 그러나 그 어느 집이라 할지라도 경계가 분명했으며 이웃을 나눈 경계는 다시 하나로 아름답게 잘 어우러져 거대한 석회석 암반 위에서 하나의 마을로 이루어진 것이다. 


곧 날이 밝고 해님이 중천에 뜨고 다시 달님과 샛별이 고개를 내밀 때쯤이면, 이곳을 찾은 이방인들은 물론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우리가 즐겨 부르던 동요와 너무도 다른 풍경.. 하니는 이곳에서 딱 한 달만 살고 싶어 했다. 이번에는 그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통편집했다. 모두 세 편으로 나뉜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 현장 두 번째 포스트는 이렇게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현지에 가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여기서 딱 한 달만 살고 싶으신지.. ANDIAMO!!



아마도 여기까지 스크롤바를 내리며 사진을 확대해 보신 분이라면 낯설지만 왠지 정감이 들 것이다. 그리고 오래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느낌이 드는 데자뷔(deja vu) 현상이 생기기도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봐 왔던 풍경과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하니는 흙 한 점 발견하기 어려운 이 낯선 도시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두 번의 그림 수업이 끝나면 바를레타(Citta' di Barletta)에서 알삐(Le Alpi_알프스산맥)로 이어지는 기나긴 동선을 그을 것이다. 오늘은 취사용 부탄가스와 배낭에 챙겨 넣을 사탕과 비상식량 등을 챙겼다. 그리고 짬짬이 나는 물론 하니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번에 떠난 긴 여행이 우리가 다녀왔던 "파타고니아 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니는 다시 알삐에서 한 달만.. 아니 죽을 때까지 살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갈 데는 많고..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살아갈만한 곳이자 천국이다.


Voglio vivere solo un mese qui_Gargano, Vieste
il 03 Agost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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