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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Sep 23. 2022

3.3. 미국 없는 세계와 변환적 리더십

3.3. 미국 없는 세계와 변환적 리더십      


앞에서 우리는 중국의 약진과 한국 산업이 겪고 있는 대중 수출 위기, 그리고 대만이 향후 미·중 충돌의 대상이 될 것이란 점 등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실제로 외교 전략가들은 시진핑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수년 내 대만 침공을 감행할 것이라 예측한다. 무엇보다 시진핑의 정치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대만은 시진핑 정권의 명운을 좌우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의 TSMC 등 반도체 의존도가 크고, 그 반도체 기술이 전 세계 산업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에 대만을 중국에 뺏길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 본토에 직접 공장을 짓도록 압박하는 카드를 구사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냉전시대에 존재했던 세계 안보를 책임지는 제1세계질서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2020년)를 저술한 피터 자이한에 의하면, 미국이 주도한 제1세계 질서는 반세기 동안 역사상 가장 높은 세계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했다. 실제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기대수명이 1950년대 이후 30년 이상 증가했으며 기술향상, 안보환경, 의료보건 등의 확산으로 지구상의 모든 이의 삶이 대폭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맹에 합류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든 철저하게 안보를 보장해주었고 탱크, 군대, 함선, 핵우산까지 제공하기로 했을 뿐 아니라, 바다를 완전히 장악한 막강한 해군력을 동원해 온갖 화물 운송에서 국적과 상관없이 어떤 선박이든 보호해주었다고 했다.      


세계 원유 수출입 해상경로와 미국해군배치


심지어 미국은 시장을 활짝 열고 ‘자유무역’이라 일컫는 협정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수출하는 상품을 계속 수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1세계 질서수호는 냉전시대의 산물이라서 동맹국들을 도와 소련을 굴복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 무너지고 난 후, 미국은 제1세계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전략적 명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에 세계경찰, 안보보장, 금융지원, 심판자 역할이자 최후의 수단으로서 시장 역할을 수행하는 데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다. 요컨대, 미국이 안보를 우선시하기 위해 경제적 동력을 포기한다는 패권국으로서의 이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미국은 세계를 순찰하는 경찰이 아닌, 자국의 경제력을 강화시키는 제국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그 첫 번째 사례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미군 철수를 협박하며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증액을 강요한 것이다. 그 두 번째 사례가 바이든 정부가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다. 전기차를 비롯한 태양광, 풍력 기업을 활성화하는 보조금 혜택 법안은 모두 미국에 공장을 짓는 조건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이 자국을 중심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세계 제조업 공급망을 재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앞으로 동맹국들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자국 우선의 고립주의로 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통해 끝난 것은 지난 30여 년간 계속된 탈냉전 시대 ‘세계화’ 경제이다. 세계화의 혜택을 크게 누린 국가가 한국이다. 한국은 세계화의 일환인 IMF 금융 위기를 겪으며 산업 체질을 바꾸었고, 곧이어 중국의 WTO 가입으로 인한 자유무역의 흐름을 타면서 중국으로 수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제조업 호황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한국의 경제규모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의 제1수출 시장이자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좋은 시기는 끝났다. 러·우 전쟁으로 인해 신냉전이 새롭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와 동시에 미국의 경제적 보복 조치 동참 요구에 한국정부가 미적거리다가 늦게서야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 결과 한국기업은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커다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태평양 경제블록을 형성하고자 할 것이고, 중국은 그 나름대로 일대일로를 비롯한 새로운 중국 중심의 경제 블록을 구축하고자 할 것이다. 이 사이에서 과거 시대처럼 한국은 미국 및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새로운 리더십 정립 : 변환적 사고

 

이상과 같이 미국과 중국은 자국 중심의 제조업 공급망을 구축하려 하는 조짐이 강하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필연적으로 수출주도 경제모델이 수월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 제품을 팔아왔고, 중국은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해서 최종 완제품을 만들어 세계에 내다 팔았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스스로 중간재를 만들어 공급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게다가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쏠림은 지속적인 리스크가 될 것이므로 중국 이외의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제조업 상품을 팔 만한 세계인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지적재산권(IP)을 수입하여 그것을 제조하고 조립해왔다. 그래서 남의 것 빨리 따라잡는 ‘패스트팔로워’가 한국 기업을 주도한 리더십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로는 한국산업의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동안 얻었던 ‘메이드 인 코리아’ ‘가성비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은 금방 중국에게 따라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세계적인 표준을 만들고 기술 변화를 선도하지 않는 한 경쟁력이 사라진다.      




따라서 단순히 빠른 실행을 넘어 독자적인 개념설계 역량이 필요해진다. 기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개념설계에 도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축적의 길>(2017년)에서 이정동 교수는 이런 역량이 고도의 기술적 전문성과 전통적 지식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혁신적 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 가운데 더욱 소중한 역량이 여러 지식들의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설계를 구조화하는 역량이다. 기술진화의 양상이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통합(Convergence)하여 기술을 새롭게 혁신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서로 다른 지식들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소통하고 중개하는 역량이 필요해진다. 이른바 미시 영역에 속하는 지식들을 교환하거나 서로 공명하는 것들을 거시적 단계로 확장시키는 과정, 즉 ‘두 질서 간의 중개’를 수행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이것이 변환적 사고이다. 변환적 사고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를 소통시키는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는 사유이며, 관계의 연결망을 확장해가는 사유이다. 요컨대, 관계들의 ‘동일성’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역량이 변환적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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