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단락에서는 기업 변환의 단계로서 ‘변형'에 관해 알아보고, 그 사례로서 구찌(Gucci)의 데마트라 소재 개발에 감추어진 내적·외적 조건을 추적해 보았다. 이번 단락에서도 변형을 통해 새로운 기업으로 변환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기업은 LX하우시스이다.
‘LX하우시스’는 LG그룹에서 분할되어 나와 LX그룹으로 편입되었다. 2021년 7월 LG하우시스에서 LX하우시스로 변경하였다. 회사 이름을 변경한 LX하우시스는 재활용 폐건자재 시장에 뛰어들었고, 2021년 12월 9일 국내 최초로 폐기된 폴리염화비닐(PVC) 창호 및 바닥재에서 다시 PVC를 추출해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선택적 매칭 제거 기술’로 명명되는데, 이 기술의 특허로 인해 건자재 시장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놀라운 것은 LX하우시스가 회사명을 바꾼 지 6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 ‘재생PVC’ 기술 특허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기술 혁신이 가능했던 것일까?
폐건축자재에서 추출한 재생PVC 특허
앞서 우리는 변환의 작동원리를 살펴보았다. 변환은 아무 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질료적 조건, 에너지 조건, 역사적 우연(사건)이 맞물릴 때 일어난다. 어떤 시스템이 안정적인 평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힘들의 불안정성, 운동성, 차이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처럼 안정적이지도 않고, 불안정하지도 않은 갸우뚱한 평형 상태를 ‘준안정적 상태’라고 한다. 준안정적 상태는 이질적인 힘들이 포화된 긴장 상태를 말하는데, 온도나 압력 같은 조건에 아주 작은 변형이 가해져도 평형이 깨지고 상태를 변화할 준비를 갖춘다. 여기서 변환이 이루어지는 온도, 압력, 준안정적 상태는 역사적 조건, 에너지적 조건, 질료적 조건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3가지 조건을 통해 LX하우시스의 기업 변환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1) 역사적 조건(사건)
LX하우시스는 LG하우시스가 13년 만에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 회사는 2021년 5월에 출범한 LX그룹에 편입되면서 7월에 상호에서 ‘LG’를 떼어냈다. 본래 LG하우시스는 인테리어 및 건자재를 담당하는 LG그룹 계열사에 속했다. LG하우시스는 2009년 4월 LG화학의 산업재 사업부문이 분할해 설립한 기업이다. PVC(폴리염화비닐), 알루미늄 창호, 기능성 유리, 바닥재, 인조대리석 등 건축 자재 및 인테리어 제품이 주력 사업 분야다.
LX하우시스 대표 인기 벽지 신제품
2) 에너지적 조건
LX그룹으로 편입될 때, LG하우시스의 임직원들은 대체로 인계되었거나, 일부 LG그룹 편향이 높은 임직원은 LG그룹 계열사로 이전해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LX그룹으로 편입된 LX하우시스에는 기존의 LG 임직원과 새롭게 충원된 LX 임직원이 혼합되어 근무하는 환경일 것이다. 이런 환경은 암묵적으로 신新·구舊의 힘이 공존하는 상태이며,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복잡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거라 짐작할 수 있다.
LX하우시스의 CEO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션을 추진할까? 형님 그룹에서 분사한 동생 그룹이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시도할까? LG와 차별화된 정체성을 보여주어 이미지 쇄신을 할 수 있는 ‘무엇’을 가장 고민했을 것이다. 기업의 차별화는 제품의 차별화이다. 제품의 차별화는 ‘기술’에서 나온다. 따라서 LX하우시스는 정체성을 뚜렷이 차별화활 결정적인 기술이 필요했으리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다행히 회사에는 LG에서 분사해 온 잠재적인 인적자원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들이 가진 정보지식을 활용하여 신소재 개발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높다.
3) 질료적 조건
LG화학은 2021년 초에 연질(연한성질)을 대상으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연질 제품에서 첨가제를 제거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 연질 소재를 인테리어 건자재에 적용하는 회사가 LG하우시스이다. 여기까지가 LG에서 LX가 분할되기 직전의 내재적 조건이다. 하지만 그해 5월 LX그룹이 분할되어 나오면서, 7월에는 LG하우시스가 LX하우시스로 바뀌었다.
이제 LX하우시스는 LG화학이 개발하고 LG하우시스가 적용하기로 한 연질 소재를 그대로 계승하여 LX하우시스의 건자재에 적용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연질 소재는 LG화학 고유의 특허 기술이다. 이는 여전히 인테리어 건자재 시장에서 LX하우시스를 LG하우시스의 연속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LX는 LG와 블연속적인 지점을 찾아내어 뚜렷이 차별 가능한 무엇인가를 시장에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질 소재와 다른 경질(단단한 성질) 소재 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이다.
*연질 – 장판, 바닥재, 매트 등 부드러운 PVC 제품
*경질 – 창호, 배관 등 딱딱한 PVC 제품
본래 A가 새롭게 개발되면, 경쟁사는 ‘-A’를 개발하는 전략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 LX하우시스는 연질의 반대인 경질(단단한 성질) 제품에서 첨가제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했고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2021년 12월 5일 LX하우시스는 경질 제품군을 대상으로 첨가제 제거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로 폐건축자재서 PVC 추출하는 고순도 재생 PVC 기술을 처음 개발해 낸 것이다.
LX하우시스는 LG화학이 개발한 기술을 연속하면서도 불연속적인 방향에서 기술을 개발했다. 연질이든 경질이든 PVC인 것은 동일하므로 연속성을 갖는 것이고 그 질료적 특징이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불연속적인 것이다. 바로 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결합시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