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일 수록 군인의 위상이 높다

by 축군인


군인이 된다는 건,

자신의 ‘일상’을 국가에 맡긴다는 뜻이다.

군복을 입는 순간부터,

개인의 시간과 감정은 ‘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처음 상무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저 축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 선택을 했다.


하지만 막상 부대의 공기를 마시고,

군가 소리에 아침을 열며,

국방이라는 이름 아래

나와 함께 있는 선수들을 이끌다 보니

이건 단순한 스포츠와는 다른 세계라는 걸

알게 됐다.



군복을 입고 운동장을 달리는 것.

훈련이 끝난 뒤에도 보고 체계와 규율을

따라야 하는 것.

“그냥 군인인데 운동까지 하는 거잖아.”

어쩌면 밖에서 보는 시선은 이 한 줄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엔,

선수이기 이전에 군인인 우리의 무게가 있다.


누구는 외출 한번을 못 나가고,

누구는 휴가 중에도 팀 일정 때문에 복귀한다.

그걸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공간.

그게 지금 우리가 있는 ‘군팀’이다.



어느 날 문득,

타종목의 후임 코치가 말했다.


“코치님, 우린 선수도 아니고 완전 군인도 아니고…

딱 중간에 껴 있는 느낌이에요.

그게 제일 외롭네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성의 혼란.

하지만 나는 이 모호함 속에서도

어떤 자부심을 지켜내야 한다고 느꼈다.



“선진국일수록 군인의 위상은 높다.”

이 말이 가슴에 꽂힌 적 있다.


그건 무기력한 군인이 아니라,

존엄을 지닌 국민의 군대를 말하는 거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심지어 미국…

그 나라들에선 군인은 존경받고,

군 체육은 국가대표의 루트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우리 사회가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어딘가에 갇혀 있다.



나는 오늘도 군복을 입고 있다.

지도자이자 군인,

그리고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으로.


때론 이 환경이 버겁고,

때론 군대라는 이름에 실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군인’이라는 단어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다.


우리가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지금,

누군가는 이 군복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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