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니, 나라는 사람이 보였다

by 축군인

내가 속한곳 안에서

나는 늘 ‘자리’로 불렸다.


훈련지도부사관.

행정.

막내코치.

주무.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는 그 역할들을 떠안은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감독과 선수 사이, 구단과 부대 사이에서

늘 중간에 있었다.

누구의 편도 아니면서

모두의 입장을 들어야 하는 위치.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제부턴가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앉은 나’만 남는다.



이번에 갑작스런 4일짜리 출장으로

그 자리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이건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감정의 거리두기이기도 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제야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역할을 감당하고 싶었을까?”

“내가 없어도 팀이 돌아가면, 그게 서운한 걸까,

안도인 걸까?”

“이제 조금은 나를 돌봐도 되는 걸까?”


그동안은 너무 많은 것들을 붙잡고 있었다.

놓는 법을 몰랐다.

놓는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고,

놓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 자리를 떠나보니,

오히려 나라는 사람이 더 또렷해졌다.



이제는 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증명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났을 때조차

내가 나를 잃지 않았다면

그건 충분히 잘 버텨온 것이라는 걸.



조금 멀어져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까이 있을 땐 너무 커 보여서

내가 작아 보이기만 했던 것들.


이제는 그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거리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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