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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을 Jul 30. 2024

첫 시작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2. 나는 학원강사입니다.


누구에나 첫 시작은 있다.


학원강사의 생리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No pains, No gains'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첫 직장도 나름 그 동네에서 이름 있는 어학원이었지만, 더 규모가 있는 어학원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주변 동료 선생님에게 조언을 받고 C 어학원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규모가 있는 어학원답게, 1차 2차 3차 과정이 있었다. 묘한 떨림과 설렘을 느꼈다. 나는 경력이 고작 과외와 아르바이트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규강사 훈련과정을 받았다. 본원에 계시는 팀장님 부원장님 수업도 청강하고, 교수팀 앞에서 수업시연도 하면서 인턴생활을 보냈다. 학부시절에도 수업시연을 했지만, 그것과 매우 달랐다. 대학생 때 준비한 수업은 모둠 활동도 많이 하고 영어를 사용하며 시연하는 게 포인트였다면, 학원은 아이들 시험 성적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수업할 때 강약조절, 학생들을 사로잡을 목소리, 강약조절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일했던 어학원은 인턴생활을 마치면 본원 or 분원 발령을 받고, 거기에서  한 반을 담당하게 된다. 나의 첫 반 학생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지역의 가장 낮은 반 학생들이었다. 이후에 서울 주요 지역에서 일하고 많은 학생들을 맡았는데도 가장 기억 남는 학생들을  고르라고 하면 난 바로 첫 캠퍼스 첫 반 학생들을 고를 것이다. 낮은반이다 보니 영어포기자도 많았고, 학원자체를 처음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다. 같이 웃고 웃으며 주 7일을 자진해 학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기억 남는 학생이 있다. 신규강사였지만 날 믿고 따르던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다. 시험대비 전까지는 꼬박꼬박 숙제도 잘해오고 누구보다도 수업시간에 태도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 학생을 P라고 부르겠다.

내신대비가 시작되고 P가 숙제를 전혀 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업태도도 안 좋아졌다. 시험 일주일 전, 마무리 점검을 하는데 P는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 본문조차도 숙지되어있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수업 후 따로 학생과 1대 1로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P는 내신공부가 너무 재미없고 자기 스타일과 맞지 않다며, 왜 암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거리면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조금 더 숙련된 강사였다면 시험에서 중요한 부분도 체크하면서 강도를 조절했을 텐데 그때는 과한 열정만 있고 방법을 몰랐을 때 였다. 그냥 암기만 시키고, 의미 없는 반복만 하고있었다. 그때 나를 잘 따르던 학생의 진솔한 말을 듣고 난 후,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학생들이 더 고생하고 더 나아가 영어를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두려웠다.


그날 퇴근 밤을 새워서 본문 보충자료를 만들었다. 빈칸, 어법변형, 순서배열까지 그리고 중요도까지 표시하며 신경 써서 핵심자료를 만들었다. 이후 학원에서 시키지 않았지만 주말에 필요한 학생들을 모아서 보충 수업을 진행했다. P는 다행히  나를 잘 따라와 줬고 좋은 성적을 받았다.


사랑에서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처럼, P 그리고 나의 첫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있다.



현재 나는 강사가 아니다. 이 순간 가장 기억남은 때를 생각해 보면 팀장으로 승진했을 때, 주요 학교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연봉이 올랐을 때가 아니다. 처음 강사생활 시작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미숙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신 준비하며 진짜 공부하기 싫다고 울면서 면담했던 나의 학생, 첫 수업 자료 멋지게 만들려고 늦게까지 자지 않고 준비했던 지난날들이 종종 생각난다. 계획대로 되었던 건 거의 없었지만 그때가 생각난다. 그 순간인 힘들었을 테지만 현재는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지금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두렵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나에게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에게 말해준다.


어차피 첫 시작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네가 생각한 대로 다 안될 거야.

그런데도 괜찮아.

누구에게나 그런 처음이 있기 마련이니깐.



#신규강사생활, #첫시작은계획대로되지않아, #누구나처음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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