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계절을 등에 업고 날아다니는 문장 같다.
아무도 읽지 않았지만,
분명 누군가의 마음에 먼저 도착해 있는 문장.
[봄]
봄의 나비는 연약하다.
막 피어난 벚꽃의 속살 위에 내려앉을 때마다
꽃잎과 날개의 경계가 흐려진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누군가의 첫 고백을 떠올린다.
떨림과 설렘이 서로의 체온을 구분하지 못한 채
부드럽게 스며드는 순간.
봄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피어나는 중이고, 시작하는 중이며,
아직 충분히 아름답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나비는 그 불완전함 위를 조심스럽게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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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여름의 나비는 대담하다.
태양이 정수리를 태우고,
공기가 끈적한 숨을 몰아쉬는 오후에도
그들은 망설임 없이 빛 속으로 날아든다.
여름은 열정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조금은 무모한 계절이다.
무언가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순간을 전부 태워버리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계절.
나비의 날갯짓은 여름의 심장박동을 닮았다.
짧고 빠르며, 멈출 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여름의 나비처럼
스스로를 태워야만
비로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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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을의 나비는 빛을 아낀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 위에서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낮게 난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나비의 색은 더 또렷해진다.
마치 사라지기 직전의 것들이
가장 선명해지는 것처럼.
가을은 이별을 닮았다.
떠날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한 번 더 바라보는 눈빛처럼
고요하고 깊다.
나비는 바람에 실려 흔들리면서도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끝을 알고 있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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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겨울에는 나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의 틈 속에서
고요히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날갯짓 대신 숨을 고르고,
빛 대신 어둠을 껴안으며.
겨울은 멈춤의 계절이다.
그러나 멈춤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음 날갯짓을 위한 준비다.
눈이 녹고,
땅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또 한 마리의 나비가
계절의 문장을 이어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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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나비와 닮지 않았을까.
봄에는 사랑을 배우고,
여름에는 열정을 태우고,
가을에는 놓아주는 법을 익히며,
겨울에는 스스로를 안아주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날아오른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나비는 매번 다른 빛을 지닌 채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는
매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같은 하날을 날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의 계절은 무엇인가.
혹시 지금,
어딘가에서 조용히 날개를 접고 있는
겨울의 나비는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