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봄

by 윤지안


벚꽃이 한 번에 터진 날이었다.

햇빛은 너무 맑아서,
마치 오늘 하루만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하늘이 깊고 투명하게 열려 있었다.

골목 끝 작은 공원에 서 있는 그 나무는,
계절이 자기 몸을 통째로 빌려 쓰는 것처럼
온통 하얗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스치면 꽃잎이 부서질 듯 흔들렸고,
그 아래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는 그 나무를 보러 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도착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여자는
내가 다가오는 걸 보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고,
손에는 다 식은 커피가 들려 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오래전 기억과 겹쳤다.

“여기, 여전히 꽃이 빨리 피네.”

내 말에 여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시간은 잠깐 멈춘 것처럼 고요해졌다.

“그러게. 너는… 여전히 늦게 오고.”

그녀는 웃지 않았지만,
그 말에는 오래된 웃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이 나무 아래에서 자주 만났었다.
약속이 없던 날에도,
이유 없이 이곳으로 향하곤 했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이 계절이 오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떠올렸을 뿐이다.


“올 줄 몰랐어.”

그녀가 말했다.

“나도.”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
오늘은 그저 걷다가,
무심코 이 골목으로 들어섰을 뿐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어딘가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이 나무 앞까지 나를 데려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로 꽃잎 하나가 떨어져 그녀의 어깨 위에 얹혔다.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떼어주려다가, 멈췄다.
예전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했을 행동이,
이제는 작은 경계가 되어 있었다.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나는 질문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니,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대답을 꺼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말하면… 끝날까 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예상했다는 듯, 혹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나는 말하면 시작될 줄 알았어.”

그녀의 말에, 바람이 조금 더 크게 불었다.
꽃잎들이 한꺼번에 흩날렸다.
마치 우리가 놓친 시간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잃었다.
아무도 떠나겠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서로의 계절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만났네.”

내가 말하자, 그녀는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벚꽃은, 꼭 다시 만나게 하잖아.”

그 말은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들렸다.
계절은 반복되고, 사람은 흩어지지만,
어떤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

나는 벤치에 그녀 옆으로 앉았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붙잡지 않기로 한 사람들처럼,
조용히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하얀 꽃들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번엔 늦지 말자.”

그녀가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이렇게 같은 계절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그날, 벚꽃은 유난히 오래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