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Feb 01. 2018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

오늘 아이가 많이 울었다. 


밥을 먹다가도 울었고

책을 보다가도 울었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울었다. 


울음이 2시간 쯤 이어지자

화가 났다.


"그만 울어."


그 말을 듣자 더 크게 울었다. 


"엄만 내 마음도 몰라주고!"


내 죄는

배고픈 아이에게 간식을 주었고

목마른 아이에게 쥬스를 주었으며

심심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것이

다였다. 

아, 2시간 째 아이의 울음 앞에

데시벨을 높이지 않은 것도 추가.


아이는 결국

울다 지쳐 잠들었다. 

세숫물인지 눈물인지 

젖은 아이의 앞머리를 쓸어내리고 있자니

아주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한 6살, 7살 쯤 이었을까. 

그 때의 나도 울고 있었다. 

난 멈추고 싶었지만

좀처럼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잠궈지지 않는 눈물에 당황한 나는

점점 더 꺼억꺼억 울었고

울음이 그쳐지지 않는다며 더 울었다.


지친 나의 엄마는

나에게 나즈막히 한 마디를 던지셨다.

오늘의 나처럼


"그만 울어. 거울 좀 봐. 

울때 얼마나 못생겼나."


그 이후의 상황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엄마 말을 듣고 거울에 비춰본 

내 얼굴이 참 흉하다 느낀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엄마와 나의 관계는 

대개 그러했다. 


예민한 나는 사춘기가 참 버거웠다.

그래서 자주 울었고, 자주 방문을 닫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랬다.


"그만 울어."


언젠가부터

난 더 이상 엄마 앞에서 울지 않게 되었다.





이 관계가 바뀐 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언제나처럼 TV를 보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동물농장이었나, 강아지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딸, 그 땐 엄마가 잘못했던 것 같아. 미안해."


엄마는 내가 13살 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엔 버릇없고

훈련 안 된 말썽꾸러기 

3살짜리 푸들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푸돌이었다.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고 있던 내겐

그 녀석이 흔드는 꼬리가 유일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푸돌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자주 부딪혔다.

집엔 자주 고성이 오갔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

현관 구두주걱 옆에 있던

빨간 강아지 집이 보이지 않았다.


파르르 떨며 당황해하는 내게

엄마는 아는 권사님 집에 맡겼다고 했다.

그 후로 녀석을 보지 못했고,

그 후로 엄마 앞에서 울지 않았다. 


엄만 20년도 지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걔 없어졌다고

니가 그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으면

엄마가 힘들어도 참을 걸 그랬어.

엄마가 몰랐어. 미안해."


참 오랜만에

동물농장을 보며 울었다.

뭐지, 이 후련한 기분은. 




13살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20년도 지나 들었다.


주눅들고 그늘져서 돌아온 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욱해서 서럽게 울던 날,

그 때 내가 듣고 싶었던 건


"그만 울어."가 아니라

"속상한 일 있었구나."였단 걸

이제야 알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사실은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할 지언정


그 때의 나에겐,

오늘의 내 딸에겐

속상한 일이 있었던 거다.


그런 딸에게 

난 오늘

"그만 울어."

라고 말했다. 


"엄마는 내 맘도 몰라주고!"

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


20년은 너무 하니까,

2시간 후에 잠에서 깨면

다시 이야기해줘야겠다.


속상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깐 그 마음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그리고 엄마에게도

이야기해야겠다.


그 땐 내가 너무 어려서

나 힘든 것만 알았다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했을지,

그 마음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그 때 엄마- 참 속상했겠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뉴질랜드 총리가 임신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