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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를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by 집녀

엄마는 최근 내게 버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서랍장, 옷장 등에 처박혀 있는 물건들을 이제는 좀 정리 즉 버리라고 말한다.

알고 보면 필요 없고,

1년 동안... 아니 몇 년 동안 쳐다보지 않는 물건들이 많다.

그런 물건들이 있는지 모르고 또 사들이면서

켜켜이 쌓여가고 쌓이다 못해 문을 열면 무너져 내린다.

통제력을 잃은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엄마가 지목한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물론 버려야 한다.

언젠가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버릴 것을(그때는 그냥 마구 버리겠지)

그나마 내가 주인이었을 때 버려주는 것이 덜 처량할 것이다.

그런데 버릴 것이 없다.

버릴 수가 없다.

버리라고 하면 큰 결단력이 필요하다.


하루에 한 개씩은 무조건 버리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구멍이 나서, 물건이 제 역할을 다한 것부터 정리하려 했었다.

그런데.. 도리어 그렇게 구멍이 날 정도까지 옆에 있었던 물건들은

더욱 애착이 생기면서 버릴 수가 없었다.

새 물건은 새 물건대로, 헌 물건은 헌 물건대로 의미가 있어 버릴 수가 없었다.


내 물건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아빠가 남기고 간 물건을 더더욱 버릴 수가 없다.

엄마가 아빠 물건을 버리던 날,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파서 엄마에게 대들고,

엄마 맘을 상하게 하고,

그 분을 삭이지 못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댔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이후부터 엄마 자신의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버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엄마 물건을 미리미리 정리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엄마가 자꾸 나보고 버리라고 한다.

그럼 나는 버리기 싫다고 패악을 부린다.

나는 도저히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겠다.


나는 사람이고 물건이고 내 곁을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

(더 이상 혼나지 않으려면 깨끗하게 정리라도.... 해야겠다.. 봄이 오니... 청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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