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엘리베이터를 싫어한다. 그래서 늘 아파트 저층을 선호한다. 여럿이 함께 타면 아무렇지 않지만 혼자 타기는 좀 거북하다. 홀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화살표를 누르고 기다리다 문이 열렸을 때, 남자 한 분만 타고 계시면 괜히 뭔가 놓고 온 것 같은 연기를 하며 뒤돌아 선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몰랐고 그냥 지극히 소심한 성격이라 ‘또 민망한 거니?’하고 말아버렸다. 아니, 왜 이러는지에 대해 딱히 따져 본 기억이 없다.
2018년 빅뱅의 멤버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 ‘버닝썬’에서 손님이었던 김상교 씨가 클럽 직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고 그 사건은 크게 이슈가 되면서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번지게 된다. 승리는 결국 상습도박, 성매매,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위반 등 9개 혐의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다른 여러 연예인들도 승리와 함께 그 추잡한 죄가 밝혀져 팬들을 실망과 분노 속에 빠지게 했다.
그 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여성들의 ‘미투(Me, too)’ 외침으로 인해 정계, 연예계, 문화계, 문학계 등 사회 각계에서 공인이었던 가해자들이 하나 둘,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새롭게 하나 떠올랐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하게 존재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았다. 친구 집은 아파트 10층쯤 되었던 것 같다. 당시 단독주택에 살던 내 기억에 꽤 높은 층수였다. 친구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중,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함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10층을 누르자 그 학생은 4층 정도를 누른 것 같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갑자기 그 남학생이 뒤에서 와락 나를 껴안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친 숨소리가 있었고 껴안은 채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누구세요, 혹은 “놔!!”이런 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학생도 나를 안은 채 아무 움직임이 없었고 나도 그대로 얼어버렸다. 남학생은 본인이 눌렀던 층에서 후다닥 내렸고 난 그냥 멍하게 엘리베이터 안을 지켰다. 나갈 수도 닫을 수도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엘리베이터 방에 붕 떠 있었다.
1층에서 4층까지 가는 시간이란, 카톡에 답 한 줄 적거나, 인스타그램 릴스 한 두 개 보거나,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눈곱 떼는 시간 정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었던 나에게 그 짧은 시간이 엄청난 공포로 다가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그 사건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뭔가 말할 거리도 없었다. 잠깐 그 학생이 뒤에서 나를 안았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고 문이 열려서 본인이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린 것뿐이었다. 그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게 뭐?’하고 심드렁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존재했으나 아무 일도 아닌 사건이라 판단되어 사라진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검은 잉크가 하얀 종이 위에 써 내려가듯 그 기억이 다시 피어났다.
모든 ‘미투’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반드시 있어야 했던 고발도 있었지만 의문과 추측만 가득한 외침도 분명 있었다. 왜 하필 ‘나의 그 사건’이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점에 떠올랐는지 확실하게 특정할 수는 없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조금 물어볼 용기가 생겼던 것이 아니었을까.
‘넌 왜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무서워? 혹시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지금도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면 숨 죽인다. 내가 숨을 죽였기 때문에 타인의 숨소리가 곱절로 크게 들린다. 그 후로 한 번도 나쁜 일이 없었던 엘리베이터였지만 나에게 그 장소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 처음 보는 타인과 꼼짝없이 함께 있어야 하는 장소다. 도중에 문을 열 수도 없고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비상버튼이 있지만 한 번도 눌러보지 않은 미지의 버튼이다. 나에게 엘리베이터는 내 뒤에 선 타인의 심장이 내게 느껴질 수도 있는 꽉 막힌 공간이다.
작은 사건이지만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되는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건은 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기억이었기에 지금까지 무의식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잘 살아왔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자비 없는 묻지 마 폭행 혹은 익명성의 뒤에서 악플로 행하는 간접살인의 피해자들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고통의 심연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서성여야 할까. 끝이 없는 그 발걸음을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지금도 백허그가 싫다. 백허그를 몹시나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솔직히 뒤에서 누가 안는다는 생각을 하면 그게 누가 되었든 소름이 끼친다. 그동안에는 남편에게 싫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깨달았다. 내가 백허그를 싫어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난 당신의 백허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답니다. 그냥 백허그가 싫어요. 백허그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아요.”
내가 왜 그렇게 엘리베이터와 백허그가 싫었는지 기억이 떠올랐고 여기 이렇게 글로도 풀어보았으니 조금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뒤에서 나를 꽉 안았던 그 사춘기 남학생의 다급한 뒷모습, 멍하게 서서 문이 닫히기만을 기다렸던 바보 같은 내 얼굴, 애써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여학생의 그 마음과. 기억나지 않는 상처라고 치유된 상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