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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Jul 10. 2024

누군가 죽어야 끌리는 여자

feat.  편성준 작가의『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작가 편성준 씨는 나와 다르게 멜로드라마를 좋아하신다고 한다. 한 때 “멜로드라마 주인공들에 대한 고찰‘이란 제목의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신 적도 있다고 하니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들은 급한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타야 할 때가 되면 언제가 2초 만에 빈 택시가 와서 선다. 주인공은 가난해도 깔끔한 원룸 같은 데 살면서도 걸핏하면 "이 거지 같은 곳에 처박혀서!" 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은 술집에 가면 얘기도 안 하고 구석에 처박혀 술만 마시는 놈인데도 결국 여자 주인공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는 성적 능력 또한 뛰어나서.... -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P11      


 편성준 씨 말씀이 맞다.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에게는 뻔한 공식이 있다. 우리는 그 공식을 다 알고 있음에도 그들이 공식을 어떻게 활용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사실 정답도 정해져 있지만 정답을 모르는 척해준다. 물론 나처럼 모르는 척이 안 되는 사람도 간혹 있긴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줄여서 ‘로코’)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연애세포가 말살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릴 때부터 이런 장르의 영상을 즐기지 않았다. 남들 사랑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고, 뻔한 결말이 지루했다. 

‘결국 그 둘이 잘 사랑하며 잘 먹고 잘 살고 뭐.. 결혼도 했겠지? 그 이상 뭐 다른 내용이 있나?’ 이렇게 나의 로코 후기는 늘 맥이 빠져있었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두 주인공 배우 송중기, 송혜교를 결혼에 이르게 한 <태양의 후예>도 1편 보고 그만두었던 나였다. 주제곡이었던 거미의 “You are my everything”만 줄기차게 듣고 또 들었었다. 


 최근 인기몰이를 했던 <눈물의 여왕>도 두 주인공이 독일에서 재회한 후부터는 더 이상 보기 싫어졌다. 결국 어떤 시련도 극복하고 함께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 것이다’라는 결말의 짙은 향기가 거북했다. 

‘뭐, 생각보다 가혹한 시련도 있겠지만 결국 주인공이 안 죽고 둘이 행복할 거라니 여기까지 보자.’ 난 항상 이렇게 ‘로코’ 주인공들의 손을 뿌리쳐버린다.      


 로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의 연애 횟수가 적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연애에 꼭 필요한 덕목이 나에게 부족하다.     

#무례함

#오지랖

 이 두 가지가 빠진 로코는 본 적이 없다.   

   

 로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옛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은 ‘무례함’그 자체인 캐릭터다. 무례하다 못해 엽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해서, 제목도 <엽기적인 그녀>다. 하지만 그 무례함을 무례함으로 일갈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주인공 견우(차태현)는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소리를 지르고 토를 하며 난동을 부리는 그녀(전지현)를 우연히 보게 된다. 하지만 술에 취한 그녀가 처음 보는 견우를 보고 ‘자기야’라는 말을 남긴 탓에 견우는 그날의 그녀를 책임지게 된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 무례한 것에는 아마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을 거야. 응 분명 그렇고말고. 내가 그 사정을 꼭 알아야겠어.’ 

 아마 견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온갖 ‘오지랖’을 감행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견우와 그녀의 데이트는 시작된다.      


 작년에 재밌게 본 <일타스캔들>이란 드라마도 마찬가지의 패턴이 있다. 전도연과 정경호의 첫 만남에 전도연 남동생의 핸드폰을 두고 서로 무례한 대화와 상황이 오간다. 하지만 결국 그 무례함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조차 없었다. 그 핸드폰이 또 다른 만남을 만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계가 깊어진다. 여기에 전도연의 오지랖까지 더해지면서 사랑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무례함이 부족하면 시작이 힘들고, 오지랖이 부족하면 깊이가 힘들다. 그런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로코가 힘들다. 아니, 연애가 힘들었다. 내가 없는 덕목을 모두 갖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이러니까 나는 안 되는 거야’하는 확신만 가득하다 끝나버린다. 나의 응원이 없더라도 그 둘은 행복한 세상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난 오늘도 누군가 살해당하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를 틀어본다. 

 ‘누가 살해당할까? 누가 범인일까? 범인이 잡힐까? 흠.. 범인의 패턴은 저런 것이군... 나라면 저런 실수는 안 했을 텐데...’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으로 사는 것도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숨 막히는 줄거리를 숨죽이고 따라가 본다. 누군가 죽었기에 살인범은 반드시 있다. 하지만 우린 그 살인범이 누군지 모른다. 혹은 살인범을 알고 있지만 그가 살인범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감독이 조금씩 흘려놓은 단서 부스러기를 주워가는 재미가 있다. 흔히 말하는 ‘밑밥’이 잘 회수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혼자 체크해 본다. 

 살인범이 마지막에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관객은 감독에게 맞은 뒤통수가 기분 좋게 얼얼하다. 나 같은 사람들은 감독의 이런 ‘정성스럽게 준비된 사기행각’을 항상 기다린다.   

   

 이상한 여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난 누군가 죽어야 끌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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