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처음 시작하면서 알게 된 단어는 ‘후킹’이었다. 그야말로 뭔가를 ‘낚는’ 행위를 말하는데,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릴 때 사람들의 눈길을 낚아서 내 피드에 오래 머무르게 하려면 제목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후킹 메시지’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었다. 뜻은 잘 알겠는데, ‘낚는다’는 표현의 저렴함 때문에, 낚고 싶지도, 낚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 글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독자의 고민 앞에 놓인 것은 항상 한 줄 ‘제목’뿐이다. 일단 낚아야 내 글의 시작을 한 줄이라도 읽게 되니 제목은 최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으로 작성돼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브런치 글을 쓰고 제목을 정할 때 1시간 이상 고민한 적도 있고, 글을 발행해 두고 10번 넘게 제목을 퇴고한 적도 있다. (지금은 다 내려놓았지만요)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릴 때도 제목은 그 어떤 글보다 중요했다. ‘터지는 글’은 항상 내 예상을 빗나갔다. 브런치 작가 Libra윤희의 글 중 가장 조회수가 많았던 글의 제목은 “아빠, 우리 아버님 좀 그만 만나요”, “엄마의 김밥에는 비밀이 있다”, “이혼한 지 14년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다.
특히 “이혼한 지 14년 되었습니다”는 누적 조회수 14만 6천을 넘어섰다. 내용은 별 것 없다. 듣도 보도 못한 여자가 ‘수면 이혼’한 지 14년이 되어 남편과 각방 잘 쓰고 있다는 글을 그렇게 많은 분들이 읽을 이유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감의 파장은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이혼을 떠올린 적 있고, 누군가는 이혼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지금 이혼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차마 이혼하지 못해서 울고 있을 테니까.
“아빠, 우리 아버님 좀 그만 만나요”는 아빠와 시아버지의 잦은 만남이 흔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연유로 자꾸 만나는 것인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 혹은 그의 남편에게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있어서 두 분이 자꾸 만나는 걸까? 만나서 무슨 얘길 나누시길래 딸이 그만 좀 만나라고 할까? 제목 한 줄에 작은 질문들이 독자들의 머리에 떠올랐을 테고 손가락은 이미 그 제목을 살짝 터치했을 것이다.
때문에 제목은 작가가 가지는 최고의 ‘히든카드’다. 히든카드를 제일 먼저 제시한다는 게 좀 특이한 방식이긴 하지만, 작가는 글을 완성하고 가장 마지막에 제목을 정하기 때문에 히든카드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작가는 ‘이 정도 히든카드를 갖춘 글인데, 한 번 읽어보실래요?’하며 슬며시 매력을 방출한다. 독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페로몬 향기를 풍기고, 미끼를 던진다. 히든카드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항상 나의 문제 이긴 하지만, 어떤 작가에게든 마지막 ‘히든카드’를 작성할 기회는 주어진다.
소심하고 주저하는 성격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도 사람과 친해지고 진심을 전하는데 남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릴 때는 그런 내가 싫어서 성급히 다가서려 노력한 적도 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늘 그런 모습이 스스로 가식으로 느껴져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런데 딱 한 줄로 매력을 뿜뿜 하라니, 늘 제목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요즘은 내 글의 제목을 정하는 일에 조금 맥이 빠져버렸다. 글의 제목, 후킹 메시지, 카피라이팅.. 이런 것에 재주가 없다고 스스로 인정해 버린 후 제목 정하는 것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대부분 글의 제목이 맥 빠지게 되어버린 요즘, 잊고 있었던 열정을 일깨워준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의 내용이 무척이나 특별하게 다가온다. 다음에 쓸 브런치 글이나 연재북의 제목은 좀 더 매력적으로 지어봐야겠다. 페로몬 향수 칙칙 뿌려 향기를 더하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나는 미끼를 달아봐야겠다.
꾸준히 4년간 홈트를 해 온 내용을 브런치에 담아보고 싶다. 평범한 40대 여성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애들이 방학을 하던 개학을 하던, 오전 약속이 있던 없던 굴하지 않고 집에서 운동을 계속해가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비결은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일단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설령 벗고 옷을 다시 갈아입는 일이 생길지라도 일단 갈아입는다.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운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음 글의 제목은 ‘일단 벗는 여자’라고 달아볼까?
다음은 편성준 작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에서
-제목은 한 줄의 페로몬 향수다-
제목은 글을 만나는 첫 번째 관문이요, 그 글을 읽게 만드는 강력한 낚싯바늘이다. (P218)
제목은 책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원제는 『Whale done』이었는데 번역본의 첫 제목은 『You Excellent: 칭찬의 힘』이었다. 판매가 부진해서 팔다가 말았다. 출판사는 고심 끝에 제목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로 바꾸었고 책은 초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바뀐 것은 단지 제목뿐이었다.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