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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머리통을 때린 사실 하나

나는 나를 검열하고 있었다

by 윤노을

물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일을 또 한 번 언급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서와 노동청에 가서 했던 것처럼 장소와 시각을 정확히 기억하려 애쓰며 '진술'하는 게 아니었기에 한결 덜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숨이 가쁘고, 식욕이 없고, 두통이 심하고,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고, 택시를 탈 수가 없고, 지하철에서조차 불편하다고 두서없이 말했다.


말하는 동안 '이게 혹시 투정으로 들리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조금 서글펐다.

다행히도 그에 대해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당연하구나,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약간 더 서러웠지만 위안이 됐다.


'큰 충격을 받으면 얼마든지 생기는 반응'이라고 했다. 아득바득 버티라고도, 이겨내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그런 일을 겪으면 힘든 거라며.

그리고 물론 이 상황이 정리되어 그 일로부터 멀어져야 근본적 해결이 이뤄지겠지만, 그전까지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선 편안한 삶을 위해 완화할 필요가 있으니 약을 좀 먹어 보자고 했다. 특히 제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덧붙였다.

상담을 끝내고 약을 받고 다음 예약을 잡고 나오는 길에 생각했다. 정말 다른 병원 내원과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그리고 문득 어떤 사실이 머리통을 훅 때리며 들이쳤다.

내가 나 자신을 검열하고 있었구나.




마음 한 구석에서 '누군가 이런 날 보며 유난이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못 이겨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건 제삼자의 시선을 위시해 내가 나를 검열하는 짓이었다. 전문가도 내게 의지박약이라, 유난이라 하지 않는데 대체 난 누구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나를 찔러대고 있었을까.

실체도 없고 실현되지도 않을 평가대에 나를 올려놓고 내가 나를 심판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자, 조금 허탈하고 조금 서러웠다. 난 왜 꼭 이런 순간만 되면 나 자신에게 가장 가혹할까.


내게 벌어진 사고와 충격은 점차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고 있었다. 직시하지 못했던 나, 어뒀던 내 모습을 바라보게 만드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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