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방문으로부터 며칠이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없지만, 핸드폰 화면에 뜬 '고용노동부'라는 글자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담당 근로감독관님은 '대표의 괴롭힘이라도 가해자인 대표 측, 즉 사용자가 직접 사건을 조사한다'고 했다.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심장이 귀를 쾅쾅 때리는 것 같았다. 우선 알겠다고 한 뒤 급한 대로 기사를 뒤졌다. 2024년 3월 SBS의 취재파일 보도를 찾아냈다.
요지는 2022년부터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도 사용자가 조사할 수 있도록 지침이 변경됐다는 것이었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았다. 위태롭고 궁지에 몰린 순간에 의탁하던 존재로부터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냉소로 뒤덮이지 않으려, 포기하고 놔버리지 않으려 애쓰던 것이 죄다 부질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그때, 책상에서 뒤로 두 걸음만 가면 있는 침대에 몸을 뉘고 이불을 뒤집어썼더라면 오늘 같은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내게 있었던 일들을 스스로 기록해 나가는, 고마운 이들을 떠올리며 고마워하는 오늘.
그때 나는 불현듯 각성 상태가 발현된 사람처럼 휴대폰에 코를 박고, 지도 앱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집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부터 '괜찮은 것 같더라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보면 좋겠다'고 했던 연인의 말도 순간 귓전에 선명했다.
당시에는 솔직히 반쯤 흘려들으며 그러마 하고 넘겼다. 더 의연해야 한다,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마음 한 구석에서 스스로를 닦아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살아오던 관성의 울타리를 아득히 뛰어넘는 '정신적 사고'를 당한 와중에 그런 생각은 미련함이었다. 훨씬 가벼운 외상에도 약을 찾고 병원을 찾는 마당에, 교통사고를 당해놓고 운동으로 극복하겠다 나서는 꼴이었다.
그래서 그냥 갔다. 병원에 전화해서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그냥, 아무 옷이나 대충 걸쳐 입고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집 밖을 나섰다. 시일을 넉넉히 두면 또 취소할까 어쩔까 하며 망설일 나임을 잘 알기에.
그리고 시간이 되어 직접 방문해 보고 나니 그 망설임은 애당초 별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정말이지, 배가 아파 내과에 가거나 목이 아파 이비인후과에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