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아이템 부자
삼 년이 지난 현재 나이 초등학교 6학년, 기분이 정말 좋다. 몇 년에 거쳐 다섯 권, 열 권씩 모으던 코난, 드디어 가장 최근에 나온 코난인 100권까지 전권을 모으게 되었다. 두둥! 쳐다만 봐도 뿌듯한 1권부터 100권까지의 꽂혀있는 ⟪명탐정 코난⟫ 책꽂이가 눈 앞에 펼쳐진 거다.
이제 우리 집에 코난이 배송 왔을 때 포장 비닐을 뜯는 것은 나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코난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으면 소파에 누워서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부스스 몸을 일으켜 현관에서 택배 상자를 가져온다. 만화책은 일반 책과 다르게 투명 비닐로 한 권 한 권이 포장되어 있다. (스포 금지는 기본이니까) 그리고 시원스럽게 비닐을 뜯고 바로 소파에서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코난을 바로 읽는다. 그렇게 수 년 동안 나만의 특별 행사가 이어졌던 어느 날, 최근에 드디어 ⟪명탐정 코난⟫ 100권이 나왔다. (99권에서 100권이 나오는 기간이 유난히 길어서 지루했다) 그리고 나는 코난 100권을 전부 모으게 됐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책 사막에서 바늘 찾기를 시전하던 내가 이렇게 많은 코난 책 앞에서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을 하고, 매일 수많은 ⟪명탐정 코난⟫ 속에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게 내 삶의 가장 큰 낙이자 자랑거리다. 하지만 막상 그 많은 코난 책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 바늘 뭉치에서 바늘 찾기다. 하지만 이 순간은 걱정 없다. 왜냐하면 결정을 빨리 못해서 맨날 우유부단한 나도 코난 앞에 서면 판사 뺨치는 실력으로 빠르고 완벽하게 판단한다. 방법은? 그냥 읽고 싶은 걸 뽑아서 다 읽으면 된다. 조금은 이상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 같은 답변이긴 해도 맞는 말이다. 굳이 오늘의 코난을 내일로 미룰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기서 갑분 고백하면 내가 좋아하는 코난은 18권, 20권, 72권, 92권이다. 많은 책 중에서 뽑긴 뽑았지만, 솔직히 더 많다.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직접 사서 읽기를 권한다. 코난 출판하는 출판사랑 아무 상관없음을 미리 밝힌다.) 이렇게 수많은 책 중 겨우 네 권을 뽑았지만, 나는 100권 모두 소중하게 다룬다. 예전에는 소중함을 못 느끼고 그냥 아무데나 던져놓기도 했지만, 요즘은 하나로 모아서 나중에 정리하는 편이다. 나중에 정리하는 이유는 읽다가 모르겠으면 다른 코난을 펼쳐 사건을 해결하는 트릭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보다 책꽂이에 코난을 정리할 때 아주 뿌듯하다. 책을 꽂을 때면 몇 권 인지 숫자가 보이는데 그럴 땐 내가 몇 권의 트릭을 알아맞힌 건지 짐작하게 된다. 물론 모르는 트릭이 절반이 넘었지만 내가 말하는 트릭은 사건 해결의 트릭이 아닌 범인 관상에 대한 트릭이다. 쉽게 설명하면 내가 만약 실제 코난에 나오는 인물이었다면 관상을 보고 범인을 맞추는 엉터리 탐정인 셈이다. 그래도 조금의 책을 읽으며 사건 해결의 트릭과 등장인물의 알리바이를 보고 판단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만의 방식인 직감으로 퍼즐을 맞추는 편이다. 어쨌거나 코난 100권이 주는 행복은 꽤 크다. 삼 년이 지나서도 나에게는 변함없이 오랜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사실 코난은 내 돈으로 산 책이 아니라서 마치 게임에서 실제 현질도 안 하고 가장 막강한 아이템을 거저먹은 기분과 비슷하다. 코난은 나에게 제일 막강한 아이템이다.
그런데 조금 어이없는 것이 한때 우리 집 코난 100권은 오빠 방 책꽂이에 촤르르 꽂혀있었다. 원래 거실 쪽 책꽂이의 꽂혀있던 코난이 어째서 오빠 방까지 갔는지는 의문이다.(다행히 글을 쓴 이후로 현재는 다시 거실 책꽂이로 나왔다.) 몇 달 전, 엄마가 책꽂이를 정리하실 때 코난이 거실 책꽂이에서 오빠 방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코난을 가져오는 방법은 좀 험난하다. 오빠 방으로 들어가서 가져오는 것이 꼭 괴물한테서 쫓기며 아이템을 획득하는 거랑 비슷하다. 특히 늦은 밤이었던 것 같다. 단순히 책만 가지러 가는 것이 딱히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오빠 방에서 가져오기 직전에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 오빠 방바닥에 정신없이 널려있는 교과서와 가방을 피해 높은 책꽂이 위쪽에 꽂혀 있는 코난을 가져와야 하다니… 어리고 깜찍 발랄한 나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다. 긴 강을 징검다리를 밟고 가야 하는 게 아니라 강을 헤엄쳐서 건너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코난을 가지러 가는 <미션 임파서블> 톰 크루즈 아저씨가 돼서 혼자 영화를 찍는다. (딱히 오빠가 빌런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다가 (빌런) 오빠에게 들키면 냅다 도망치면 된다. 최대한 빠르게 만화책을 샤샥 뽑아 나가려고 하면 저음 목소리로 나지막이 “나가...” 라고 말했던 (빌런) 오빠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러면 ‘이 정도 레벨이라면 아이템을 쉽게 얻을 수 있겠어!’라며 혼자 안심한다.
요즘은 아예 아침에 코난을 한 무더기 뽑아서 내가 읽을 장소에 많이 갖다 놓기 때문에 더 이상 <미션 임파서블>을 찍을 일이 없어졌다. 조금 웃기게 들리겠지만, 요즘은 (가짜 빌런) 오빠와의 대치 상황이 그립기도 해서 일부러 밤에 가지러 갈 때도 있는데, 학원 가느라 오빠가 방에 없을 때가 많아서 솔직히 조금 아쉽다.
이제 ⟪명탐정 코난⟫의 설명창을 확인할 차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설명창은 책 껍데기 얘기다. 먼저 앞표지와 뒤표지를 살펴본다. 앞표지를 잘 살펴보면 코난의 사건 해결이 되는 힌트가 나온다. 뒷표지는 사건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다. 그다음은 첫 장을 펼친다. 지난 권의 내용과 이어질 때도 있고 안 이어지고 새로운 내용으로 시작하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나는 두 갈래 길 다 좋아하는 편이다. 전에 내용과 이어지면 왠지 모르는 설렘과 긴장감으로 몰입을 하게 되고 새로 시작하는 내용이면 뒤로 갈수록 용의자들의 수상함, 누군지 모르는 압박감에 몰려 있는 탐정들을 보면 어느새 나도 빨리 범인을 잡으라고 응원하고 있다. 만약 내가 코난 탐정이었다면 야마무라 형사(입이 길쭉한 형사인데 14권부터 나오는 인물이다.)라는 조금, 아니 좀 많이 자기 생각대로 논리 없이 범인을 생각하는 웃기지만 엉터리인 형사일 것 같다. 몇 번 그런 상상을 하면 혼자서 웃기도 하는데 그럴 때 주변에서 보면 “그게 그렇게 재밌어?”라는 물음에 괜히 뻘쭘해져 헛기침을 ‘크흠’ 한 후 이불 속에 푹 파묻혀 코난을 다시 읽는다.
어쨌거나 나는 코난 100권이라는 최고의 아이템을 완벽히 획득했다.
나는야 아이템 부자다.
글: 초등작가 아린
사진: 에디터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