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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권, 폭탄 사건 말하는 거죠?”

오타쿠 말고 코덕



“36권, 폭탄 사건 말하는 거죠?”




최근에도 코난을 열심히 정독하고 있다. 코난을 읽으면 혼자 있을 때의 고독함과 혼밥이 친구가 되어준다. (나로선 혼밥이라고 해봤자 몇 번 집에서 컵라면 먹은 게 전부이긴 하다.) 나는 원래 책을 읽을 때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그제야 겨우 내용을 알게 되는 책이 싫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내 상상에 맡기며 책을 나만의 방법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코난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 집중력이 엄청 늘어난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코난을 읽으며 이런 개이득이 생길 줄 정말 몰랐다.) 어쨌거나 코난을 반복해서 수없이 읽다보니 확고해진 나만의 생각이 있다. 그 생각은 코난 30~40권 사이가 코난 시리즈의 전성기라는 거다. 그래서 유독 나는 30~40권을 여러 번 읽었다. 그림체와 내용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특히 36권과 37권에 나오는 형사 사건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더 이상의 내용은 스포이므로 침묵!) 그림체가 톡톡 튀는 게 이전 권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계속 반복해서 읽다 보니 저녁밥을 먹다가도 코난 책 표지만 슬쩍 눈 앞에 보여도 내용을 맞추는 신기방기한 능력까지 가지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2권, 10권, 36권, 90권, 63권 등등 다양한 책의 내용을 알아맞혔다. 사실 기억력이 그닥 좋은 편도 아닌데 코난에 대해선 아주 빠삭하게 기억을 한다. 누군가가 코난 몇 권에 무엇이 나오냐고 물었을 때 내용을 맞히면 왠지 모를 성취감과 자부심이 올라온다. 이런 게 코난에 대한 나만의 잘난 척 방법이다.

언젠가  , 엄마가 식사를 차리다 코난에 대해 얘기를 꺼내신 적이 있다.(우리  가족은 모두 코난을 무척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코난 재미있긴 한데… 초등학생이 폭탄 해체까지 하고,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라는 말에 나는 밥을 먹으면서 덤덤하게

“36권의 폭탄사건 말하는거죠?”

라고 단번에 알아맞혔다. 아마 그 순간 식탁 쪽으로 오던 엄마의 입이 떡 벌어져서 2초간 정지했던 것 같다.

“우와… 아린아! 너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권 수를 맞춰?”

엄마가 흥분하며 신기하다라는 말을 하는데 조금은, 아니 조금이라 하기엔 좀 많이 잘난 척을 했다.

 이정도야 기본이죠.”


이때의 킬포는 숨길 수 없는 올라간 입꼬리다. 코난이 나에게 이런 잘난 척까지 해주게 만들다니. 생각할수록 읽기 시작하길 잘했다는 자랑스러움이 든다. 딱히 권 수를 맞추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30~40권 사이를 꾸준히 읽어서 그런지 그 장면이 저절로 떠올라서 답을 맞춘 것인데 그게 그렇게 신기했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말하기 싫을 때도 있다. 이유는 ‘오타쿠’라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나는 유행어나 신조어를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랬던 내가 오타쿠란 단어를 처음에 들었을 때 과자 이름인 줄 알았다. 새로 나온 ‘오레오 타이어 쿠쿠다스’ 뭐 이런 요상한 종류의 이름이라고 혼자 넘겨서 상상했다. 하지만 오타쿠는 덕후임을 뜻하는 일본어였다. 나는 코덕도 아닌 왠 과자 이름 같은 일본어가 맘에 안 들었다. 아니면 정말 ‘오타쿠’가 된걸까? 36권이 폭탄 사건이라고 맞춘 나는 그렇게 조용한 ‘오타쿠’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코덕 이라는 말이 입에 더 착착 붙기 때문에 스스로 코덕으로 부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36권 폭탄 사건을 맞추고 코덕이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말이다.



나만의 코덕은 덕후 중에서 가장 행복한 덕후일거다. 100권 이라는 코난 책 중에서 매일 무엇을 읽을까 고민을 할 수 있는 나에게는 ‘나만의 행복한 직업’이 된 셈이다. 그래서 나에게 코덕은 직업이다. 만약 ‘코덕 자격증’이 있다면 난 바로 그걸 따러 갈 거다. 코덕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더 즐거운 직업일 테니까. 그렇게 나의 코난 내용 맞추기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고요한 잘난 척은 평소에도 늘었다 줄었다 한다. 코난 내용에 대해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좋은데 그러려면 상대가 코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 내 주변 어른들이나 친구들 중에서는 나보다 코덕 레벨이 높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이를 막론하고 코난 이야기로 한참을 즐겁게 대화하고 싶지만, 이런 사람을 찾는 게 또 한 번의 사막에 떨어진 바늘 찾기 같았다. 얘기할 상대가 없다면  혼자라도 꾸준히 코난을 좋아하면 된다. 코덕이 된 나는 잘난척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싶은 거다. 코난을 열심히 읽으면서 처음 코난을 접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나의 사고방식이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단순히 몇 권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 지 맞추는 신기방기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코난과 내가 같이 자라고 있는거다. (물론 코난은 20년 째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게 만화 속 현실이지만) 그리고 나는 모든 걸 뭉뚱그리는 오타쿠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코덕의 길로 가기로 했다.

난 오타쿠가 아니다. 코덕이다. 코덕!


에피소드를 말하면 바로 몇 권인지 맞추는 건 코덕의 기본 덕목이다 (마스크 쓰고 잠시 찬조출연)


글: 초등작가 아린

사진: 에디터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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