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모음 Sep 13. 2024

엄마가 밥 먹이는 건 다 살찐다

"아이고! 너네가 무슨 고양이를 키운다고!" 엄마가 갑자기 우리 집에 왔다. 첫째 고양이 사또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숨어있나, 구석구석 둘러보다 책장 세 번째 칸쯤에 인형처럼 앉아있는 사또를 발견했다. 움직이지도 않고 엄마와 우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비염이 심한 언니와 기관지가 좋지 않은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책장에 있는 사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사또는 얼굴을 손에 부비며 눈을 감은채 골골송을 불렀다. 작은 회색 몸을 품에 안아 들었다. 엄마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엄마, 우리 얘랑 진짜 잘 살 수 있어. 그리고 자세히 봐봐. 너무 이쁘지?" 엄마는 사또를 바라봤다. 그리곤 한숨을 쉬면서도 쓱- 털을 쓰다듬었다. 손바닥만 했던 회색 고양이 사또가 엄마 눈에도 귀엽긴 했나 보다.


며칠 우리 집에 머물며 엄마와 사또는 꽤 친해졌다. 엄마는 사또만 보면 소리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폴짝폴짝 뛰다가 바닥에서 구르는 모습이 귀엽고 웃긴 듯했다. 나는 그 둘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아이고? 뭔 고양이가 또 생겼어?! 내가 진짜 너네 때문에 못 살겠다" 둘째 고양이 바바를 길에서 구조해 왔을 때도 엄마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길에서 험한 일을 당했는지 온몸에 화상과 피투성이었던 작은 고양이가 신경 쓰였나 보다. 엄마는 “어휴, 너무 짠해. 인간들이 제일 나빠"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수 간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북어를 삶아 식힌 후 직접 손으로 찢어 주기도 하고, 백숙을 해서 닭고기의 살코기 부분만을 골라내어 먹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사또와 바바는 엄마만 보면 냥냥 거리며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표 간식을 내놓으라며 목놓아 우는 듯했다. 엄마의 사랑과 간식을 받은 고양이들의 뱃살이 점점 두툼해졌다. 조물조물 만질 때마다 찰진 느낌이 들어 진짜 최고로 귀엽긴 했다.


작년에는 3개월 정도 엄마와 고양이, 그리고 내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엄마가 오늘은 무슨 밥을 해주려나?'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퇴근했다. '띠. 띠. 띠. 띠. 띠. 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온갖 맛있는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막 지은 잡곡밥과 시원한 콩나물국, 쫄깃한 가지나물과 꼬소한 계란말이, 그리고 매콤한 오리고기볶음까지. 엄마 밥은 이상한 마법이 있어서, 같이 식탁에 앉아 밥만 먹었을 뿐인데도 온 마음이 온기로 가득 찰 때가 많았다. 마음에 쌓인 고민과 나쁜 생각들이 사르르 사라진달까. 직장에선 그저 한 명의 일개 직원일 뿐인 '내'가, 그 순간에는 엄마의 세상 가장 소중한 '딸'이 되는 기적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엄마의 그 따뜻한 밥이 정말 좋았다.


엄마와 함께 사는 그 기간 동안 사또와 바바, 나 모두 몸무게가 늘었다. 살찐 건 몸뿐만은 아니었다. 핼쑥하던 마음도 포동포동해졌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바바도 엄마만 보면 옆에 얼쩡얼쩡 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잘 때도 엄마 침대로 올라가 엄마 옆쪽에 가서 잘 정도였다. 우리 모두 마음 곳간이 엄마의 따뜻한 관심과 말로 가득 채워졌던 거라 믿는다. 역시, 엄마는 모든 걸 살찌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엄마를 사랑하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살 찌우고, 마음을 채우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