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이러다 정말 쪄 죽겠다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고양이 사또와 바바도 그런 것 같다. 한낮에 실눈을 뜬 채 꼬리를 살랑이며 창문 앞에 늘어져있는 모습이 꽤 평온해 보인다. 고양이들은 더위를 안타나? 인터넷 창에 검색해 보니, 사람보다 체온이 높아서 사람보단 더위를 조금 덜 타는 게 맞다고 한다. 그래도 이런 시간에는 덥지 않나. 괜스레 다가가 "너희는 정말 안 덥니?"라고 물으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천천히 몸을 쓰다듬는다. 그르릉 그르릉 고양이들 몸에서 나는 진동음이 내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온다. 여름철엔 살이 맞닿으면 불쾌지수가 높아진다는데, 우리 집 고양이들은 이 더운 날 집사의 뜨근한 손길에도 행복지수만 높아진다.
쉬는 날이면, 사또와 바바, 그리고 나는 거실 땅바닥에 쭈르륵 나란히 누워서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거실은 집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유는 하나다. 해가 잘 들어온다. 거실 커튼을 한쪽으로 치워두면, 조명을 켜지 않아도 자연광으로 거실이 환하다. 햇볕이 좋은 우리는 가만히 거실에 누워 있는다. 햇살이 맨살에 닿는 것이 즐겁다. 구름이 해를 가릴 때마다 옅은 그림자가 집안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장작을 켜두고, 불을 쳐다보며 멍하게 있는 "불멍"이 유행이었다던데. 우리 집에서는 햇볕을 멍하게 흡수하는 "해멍"이 유행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면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 바람을 쐰다. 냉동실에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꺼내, 한입 깨어 문다. 바깥에선 낮에는 매미 소리가, 밤에는 개구리 소리가 온 동네를 가득 채운다. 소리만으로도 한여름이다. 이상하게 나는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아마도 내가 여름철의 식물성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는 식물성 존재야." 친구가 말했다. 엄청난 폭염으로 길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도 몇몇 보이지 않던 날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였던 카페를 걸어가며, 앞에 펼쳐진 눈부신 풍경에 완전히 넉다운되는 중이었다. 뭉게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해가 초록초록한 나무들을 환히 내리쬐는 것이 장관이었다. 카메라 어플을 켜서 사진을 한 장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날씨가 미쳤다고 메시지를 적었다. 미쳤다, 좋은 의미였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새삼 좋았다.
"이런 날씨에도 햇빛이 좋은 거 보니, 진짜 너는 여름이 좋은가 보다." 친구가 웃으며 얘기했다. 겨울철엔 불러도 꽁꽁 숨어 나오질 않는데, 여름철만 되면 어디선가 뿅 하고 나타나 생기를 뽐내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 여름날의 햇볕을 다 흡수해서, 에너지로 쓰는 게 분명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물성 존재, 친구가 말한 그 단어가 무척 맘에 들었다. 그래, 나는 숨겨둔 초록잎을 여름철에 팝! 하고 터뜨리는 식물성 존재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지쳐가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힘이 나고, 뽈뽈뽈 잘만 다니는 건지도.
카페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고맙게 느껴지고, 산미 있는 커피도 맛있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행복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소소한 일상이, 내게 선명한 감정을 남기고 있었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초록 잎들이 싱그러워서, 나무와 풀과 꽃이 힘 있게 느껴져서, 낮이 길어지니 움직이기 좋아서, 추위에 약한 편이어서 등.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장마가 끝났고,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는 듯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쨍쨍 내리쬔다. 쪄 죽어도 여름이 좋은 고양이들과 나는 거실에 드러누워 밝은 빛에 몸을 지진다. 몸도 마음도 뜨끈뜨끈해져 버린다. 햇살을 받아 우리 안에 있던 작은 초록 잎사귀가 밖으로 쑤욱 내밀어지는 상상이 된다. 고양이 머리 위로 뾰족뾰족하게 나온 새싹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니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행복해진다. 역시 이 여름의 햇볕 아래선 무엇이든 가능할 것 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