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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음 Oct 20. 2024

고마워, 너와 있어서 괜찮아졌어

재잘재잘 말하는 입을 바라봤다. 앞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친구는 워킹맘이었다. 그녀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쌓여가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대해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이유로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그녀의 작은 한숨이 들렸다. 겪어보지 않은 삶이었다. 내가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었다.


못 본 1년 사이 핼쑥해진 얼굴과 얇아진 손목, 피곤해 보이는 친구의 표정에 마음이 쓰였다. '괜찮아. 곧 다 좋아질 거야.'라는 말이 좋을까, '네가 진짜 고생이 많다.'라는 말이 좋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나의 대답이 친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조심스러웠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그녀의 손을 조심히 잡았다. 그리고 가만히 토닥였다. 친구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아 온기를 전달하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었다.


"고마워, 너랑 얘기하고 나니 괜찮아졌어." 정말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는 나와 얘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고 했다. 참 다행이었다.




우리 집 둘째 고양이 바바는 여전히 사람을 무서워하고,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몸을 부들부들 떨며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리고 숨는다. 그런 바바가 창가에 앉아 창 밖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바바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혹시 지금 너는 무섭거나 슬픈 거니?' 어쩐지 그 모습이 한없이 슬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네 발바닥에 화상을 입은 채 피를 뚝뚝 흘리며 살려달라며 소리를 내며 떠돌던 아기 길고양이. 그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산지도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바바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면, 동그랗게 커진 동공으로 나를 한껏 경계하며 쳐다본다. 살며시 손을 뻗어 얼굴과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면, 이내 '괜찮구나'라고 느낀 바바는 골골 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편안해진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나는 바바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다. 알아듣진 못하더라도, 바바가 고양이 언어로 내게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매일하고 있는 거길 바란다. '고마워, 너와 있어서 괜찮아졌어'라고 바바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곁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 있길. 내가 사또와 바바에게 무한한 애정과 고마움을 느끼듯이, 바바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큰 행복을 느끼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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