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와 함께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쓰다 듬으려 손을 뻗었는데 바바가 겁을 먹은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렸다. '어쩌면 길에서 혼자 생활하는 게 더 편할 아이를, 내 욕심으로 데리고 와서 스트레스받게 하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길로 보낼 순 없었다. 고민하다 최대한 혼자 두는 게 좋은 거란 결론을 내렸다. 바바가 거실에 있으면 방에 들어와 있고, 바바가 방에 있으면 거실로 나갔다. 조금이라도 혼자 편하게 있길 바라며 같이 있는 걸 피했다.
집 밖으로는 찬 바람에 코끝이 빨갛게 물드는 계절이 오고 있었다. 추운 건 잘 못 버티는 지라,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겨울 준비를 시작했다. 옷장 한쪽에 고이 잠들어 있던 전기장판과 두꺼운 이불을 꺼내 침대에 깔았다. 어느새 사또가 이불 위에 앉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바도 생전 처음 보는 전기장판과 극세사 이불이 궁금했는지 조심스레 근처로 와있었다.
적당한 온도를 맞춰놓고 가만히 누워있으니 노곤해졌다. 이불 안에는 훈훈한 온기가 가득했다.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잠깐 잠에서 깨 옆을 보니 좌우로 사또와 바바가 자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사또의 몸에 얼굴을 푹 파묻으니 따뜻한 온기가 확 얼굴로 느껴졌다. 사또와 꽁냥꽁냥 거리고 있는데, 인기척에 깨어난 바바가 은근슬쩍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만지진 않고 가만히 쳐다보자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쿵 박고는 골골송을 부르며 우리 곁에 누웠다.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자기소개 시간이 두려웠다. 수백 번은 더 생각하고 연습했던 말도 사람들 앞에서 하려면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떨렸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혼자 책을 읽으면 그저 편안했다. 누군가에게 자기소개할 필요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 그게 좋았다. 그러다 같은 반,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매일 같이 등하교를 했는데, 친구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게 참 재밌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우리 집 강아지가 어떻다느니 그런 시답지 않은 대화에 깔깔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학교에서 점차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학교를 다니는 게 이전보다 즐거워졌다.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땅따먹기, 한발 뛰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를 하고, 하교 시간에는 친구들과 분식집에 들러 컵볶이를 손에 들고 어느 때보다 많이 웃었고, 행복했다.
바바에게선 내 모습이 보인다. 혼자 있는 게 편하긴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온기를 사랑하는 내 모습. 바바가 내게 와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같이 산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친해지는 중이다. 침대에 함께 모여 자고, 찰싹은 아니더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앉아 늘 서로를 지켜보며, 혼자보단 함께 있는 것에 더 행복을 느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