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화.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하는 게 뭐가 어때

승호 이야기 - 그냥 하는 말들이 문제

by 히읗
그냥 외로운 편이 나았다.

현승호. 39세. 은수가 다니는 외국계 제약 회사의 영업 1팀 팀장.

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승호는 유능한 직장인으로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차갑지만 감정적이지 않고 젠틀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부하 직원들의 잘잘못을 지적할 줄 아는 은수의 팀장이다. 몇 년 전 리스크가 큰 주식 종목에 투자해 대박을 친 후, 바로 주식에서는 발을 빼고 부동산으로 관심을 돌려 마흔이 되기도 전에 부모에게 물려받지 않고도 잠실에 40평 대 아파트를 살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이다.


호가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그의 팀은 계속해서 신입 티오가 나지 않았고, 3년째 막내 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희망의 소식이 들려왔다. 하버드나 컬럼비아와 얼추 비슷한 급의 외국 대학을 나왔다는 해외파 2명과 그들 사이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고 일처리를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경력자 같은 순수 국내파 신입 1명이 승호의 팀으로 배치된다는 소식이었다. 승호는 이상하게 순수 국내파 은수에게만 힘든 업무를 배정했다. 은수는 경력직도 힘들어한다는 그런 일들을 무던히 해냈고, 무정의 로봇 같은 승호는 팀장으로서 당연히 일 잘하는 은수에게 계속해서 중요 업무를 맡겼다. 회사 입장에서 일이란 누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잘 해내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 팀장인 승호로서는 효율적으로 업무 배분을 한 셈이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였을까?

승호는 외근을 나가서도, 퇴근 시간 이후에도 급한 업무라며 은수에게 종종 연락을 해댔다. 은수는 그런 승호의 요구에 늘 군말 없이 응했다. 게다가 은수는 누가 봐도 일을 잘했다. 다른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을 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승호의 라인이라든지 승호가 더 챙겨주었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리지 못할 정도로 은수는 일을 잘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은수에 대한 승호의 편향된 관심과 차별적 대우로 인해 은수가 승승장구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확히 그 소문이 승호의 귀에 들어간 후부터 과장을 눈 앞에 둔 은수의 승진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어린 현승호 이야기]

승호가 중학교 2학년 때, 정확히는 새 학기가 시작하는, 공기가 아직은 차가운 봄날의 첫 월요일 아침. 신호에 걸려 멈춰 선 버스 안에서 승호는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04번 마을버스 아래 사람 다리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승호가 탄 버스 안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신호가 바뀌자 이내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학교에서도 마을버스에 깔린 다리 한쪽이 승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다리 누구였을까? 승호는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승호가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했 생각이 그대로 펼쳐졌다. '아마도 담임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다.' 2교시가 시작 지 10 분쯤 나자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앞문으로 똑똑하고 들어와 수학 선생님과 몇 마디를 하고는 승호를 불러내 시내에 단 하나 있는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했다.


형이었다. 다리를 저는 승호의 형이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형제 상회'라고 써진 앞치마를 두른 엄마와 교복 차림의 누나는 승호가 온 줄도 모르고 울고 있었다. 승호도 엄마와 누나 옆에 앉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리를 저는 병신 같은 형을,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소리만 지르는 형을 미워했던 승호였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엄마는 마치 구전 동화 속 이야기를 들려주듯 어린 승호에게 말했고, 승호는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던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다리를 저는 형이 대신하는 거라고 엄마는 자꾸만 승호에게 되뇌었다. 어린 승호는 그래도 내 아버지는 형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했으므로, 아버지 행세를 하는 형이 그렇게도 미웠다. 나이 차이가 11살이나 나는 형이었고 승호는 막둥이었다. 보통 막둥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고 하는데, 승호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다리를 저는 형에게 항상 매질을 당했고, 매가 없으면 주먹으로 맞았다.


'그게 사랑이었을까? 다 내가 잘 되라고 그랬던 것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다리를 저는 형에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까지 투사해 형을 더욱 부정했다. 그런 형이 지금 수술실 안에 있다.


장장 7시간이 지났다.

늙은 의사가 나왔고 엄마와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젊은 의사와 간호사가 수술 침대를 밀고 나왔는데 그 위에 다리를 저는 형이 누워있었다. 다리는 저는 다리 한쪽만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런 사고를 당하고도 목숨이 남아 있었던 게 기적이라고 했지만, 형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았겠다고 말했다. 승호도 속으로 '그래, 그게 나을 뻔했다.'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성으로 형을 간호했고, 식당일을 하며 주인 몰래 손질하고 버린 고기 뼈를 싸와 몇 시간이고 고았다. 그리고 그 국물은 오직 형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형의 절단된 다리 한쪽은 아물어 갔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승호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형은 한쪽 다리를 절면서도 손 기술이 좋아 공사장에서 곧잘 목수 일을 했었는데, 사고 후에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목발을 짚고 슈퍼로 나가 소주를 두 병씩 사다 마셨다.


4월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 시험을 만족스럽게 보고 일찍 집으로 돌아온 승호는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4 식구 단칸방 살이를 하며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보지 못한 만화책을 꺼내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더없이 행복했다.


그날은 형이 동네 친구들과 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고, 모임이 파하자 술이 덜 된 아쉬움에 어김없이 슈퍼에 들러 소주 두 병을 샀다. 소주가 든 검은 봉지를 두 손가락에 걸고, 손바닥으로는 목발을 집어 집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슈퍼 앞에서 우회전으로 급하게 들어오는 택시가 형을 덮쳤다. 이 두 번째 사고에서 형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사망 선고를 받았다.


형의 장례식장에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먼 친척들이 승호와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며 한 마디씩 던졌. 그 말들 속에는 승호를 쳐다보며 '저 어린것 아부지 노릇만 해주다가 저렇게 불쌍케 가뿟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승호는 이번에도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승호의 모습을 본 먼 친척들은 또다시 수군거렸다. 형이 없는 승호의 집은 늘 어둡고 조용했다. 엄마도 누나도, 승호도 말이 없었다.




어딜 가나 말이 없는 승호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음흉한 놈이다. 그렇지만 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하는 잘난 놈이니까 무섭기도 하다는 그저 말을 위한 말들이 승호를 공격했고, 승호는 방어의 수단으로 회색처럼 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길을 택했다. 공격을 공격으로 받기보다는 방어를 철저히 해서 공격을 당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다만 회사에서는 달랐다. 실적이 그를 평가하는 유일한 지표였고, 승호는 그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했으며 거기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승호는 일에서만큼은 공격적으로 열심히 했고, 타인의 인정 속에서 안도했다. 그러나 문득문득 뭔지 모를 불안감 휩싸였고 승호의 방어적 성향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승호는 자신의 가족 얘기를, 특히 형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일지라도 절대. 깊숙이 베긴 아픔을 들추어 내 일부러 생채기를 내는 것보다는 방어적인 인간이 되는 편이 나았고, 그냥 외로운 편이 나았다.


어느 날 업무차 나간 곳이 장은수의 집과 가까웠다. 마침 출출하기도 해서 그녀와 국수나 한 그릇 먹고 싶었다. 술이 많이 취하지도 않았건만, 승호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형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슬프지 않게 담담하게 팩트만 압축해서 말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처음이었다.

은수도 애써 담담한 척하며 더 이상 묻질 않았다. 승호는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리고 고마웠다.


#승호와 은수의 통화 기록

"장 과장. 이번 주말에 대전으로 학회 잡힌 거 알지? 준비 잘됐나 하고."

"네. 팀장님. 근데..."

"근데 뭐?"

"지금... 새벽 1시예요."

"아.. 자고 있었나?"

"네.... 팀장님은 안 주무시고 계속 일하시는 거예요?"

"아니, 그냥 잠이 안 와서."

"팀장님...."

"어? 그래 자..."

"네... 팀장님도 주무세요. 아... 그리고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뭐?"

"주무세요."

"그래. 고맙다."


#오늘의 출제 포인트 feat. 유진

황순원의 '별'

황순원 하면 '소나기'가 가장 먼저 떠오를 텐데, '별'이라는 작품도 있어. 여기에서도 소년이 등장하지. 소년은 어릴 때 여읜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해. 그런 소년을 누이가 마치 엄마처럼 정성으로 돌봐 주지. 어느 날 소년은 누이가 죽은 엄마와 닮았다는 한 노파의 말을 듣게 되는데, 마음속으로 자신의 엄마가 저렇게 못생긴 누이를 닮아서는 안된다고 부정하면서 누이를 미워해. 심지어 누이가 만들어준 인형을 땅에 묻어버리면서 누이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지. 그러다 누이가 시집을 가고 얼마 되지 않아 진짜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리고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나.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누군가의 죽음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할까?

그 죄스러움과 후회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마음을 상하게 할 테니 말이야.

미움도 사랑만큼이나 관심이 있는 대상에게 쏟는 정서적 에너지잖아.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그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거니까.

분명한 건, 절대적으로 사랑했던 대상의 죽음만큼이나 미워했던 대상의 죽음 역시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 거라는 거야. 그게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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