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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Aug 19. 2021

계단을 오르며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하체 힘이 점점 약해진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한 계단 오르기. 오늘은 20층을 세 번 오르는 것이 목표다. 쉬지 않고 오를 때도 있었으나 다시 그 기력을 되찾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조금씩 나누어 오르기로 한다. 이제는 의욕을 앞세워 무리하면 몸에 탈이 나는 나이가 되었다. 워밍업이 좀 더 오래 걸리는 나이. 하여 10층씩 두 번에 나누어 오르기로 한다.      


6-7층을 오르니 벌써 숨이 차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중력과의 줄다리기다. 나를 자꾸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야 한다. 중력은 변한 것이 없는데 내 몸은 왜 이리 무거워졌을까. 내 몸을 돌보기를 게을리했다는 증거다.      


10층과 11층 사이에 난 작은 창 앞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한동안 심장이 계단을 오를 때보다 더 격렬히 뛴다. 부족했던 산소를 더 빨리 몸의 곳곳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중력처럼 나를 지상에 붙어 있도록 당기는 힘이 있다. 가족, 나를 둘러싼 관계, 내가 살아가는 세상. 내가 의식하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나를 당기는 것들이다. 어느 때는 그 힘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친 적도 있었다. 벗어나 한동안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엄습해오는 공허감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하고 싶은 것도, 꼭 해야 할 것도 없는 삶이 주는 공허감이다. 좋은 책을 읽어도, 좋은 음악을 들어도, 재미난 영화를 보아도, 그 공허감은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가쁘던 호흡이 가라앉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7-8층을 오르니 다시 가빠오는 숨. 중력과의 줄다리기에 버틸 수 있는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다시 1층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처음보다 조금 수월해진 것처럼 느끼는 것이 착각만은 아니다. 그 사이 몸이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다시 시작되는 중력과의 줄다리기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몸이 계산하여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너지의 레벨업.     


나를 지상에 붙잡아 두는 가족과 그밖의 여러 관계가 고마울 때도 있지만 그것도 줄다리기다. 나의 힘이 약하면 끌려가 휘둘리게 된다. 그렇다고 압도적 힘으로 내게 끌어당기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의 인생을 다 책임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긴장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힘을 길러야 한다.     


이번에는 두 층 더 올라가 12층 계단참에서 숨을 돌린다. 심장이 격렬히 뛰는 것은 마찬가지. 그래도 심장이 아직 제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허황되고 거짓된 정보가 나를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눈길을 잡아끄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달콤한 문구로. 지금은 그런 거짓정보와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시대다. 분별력이 없으면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예 정보와 담을 쌓고 사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면 더 큰 오류에 빠지기 쉽다. 어떤 것이 나를 유혹하는 지 알되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세 번째 오르는 20층. 온몸이 땀으로 젖어가지만 몸은 오히려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중력과의 줄다리기가 조금 더 쉬워진 느낌.      


집에 들어와 와 물 한 잔 마신다. 생명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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