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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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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Dec 21. 2019

고양이 R

5화

흰둥이가 흥건하게 토하는 바람에 나도 헛구역질이 났다. 그날은 여러모로 기억될 날이다. 고양이는 지나온 기억을 일부러 떠올리지 않지만 이 날 얘기는 안 할 수 없다. 우리가 서로 욕하고 할퀴고 기댄 철창은 왁자지껄한 바닥에 던져졌다. 철창이 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닿자 엉덩이가 아팠다. 나는 양양 울고 노랭이는 양양 소리쳤다. 머릿속에서 온갖 소리가 뒤섞여 뒹굴뒹굴 흔들렸다. 나는 너무 어지러워 흰둥이 옆에 쭈그리고 누웠다. 배고프고 춥고 아팠다. 뿌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있는데 바람이 철창을 가로질러 어딘지 모르게 휭하니 달려갔다. 코점박이가 발톱을 꺼내 부르르 떨더니 입을 앙 다물었다. 노랭이는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옆자리에는 작고 뾰족한 입을 가진 애들이 있었다. 얘들은 툭하면 몸을 퍼덕댔다. 푸드득 댈 때마다 몸에 붙은 털이 푸르륵 휘잉 돌다가 철창 가까이 날아왔다. 앉았다가 설 때마다 멀건 똥을 쌌다.    


_아, 좆나. 더러운 것들이라니!          

   

코점박이가 털을 부르르 세우며 일어났다.     

        

_하찮은 것들은 저렇게 아무 데나 똥을 싸지른다니까. 쌍것들!     

_어떻게 우리를 저런 것들과 나란히 두는 건지 몰라. 어후, 냄새나!

    

노랭이가 눈꼬리를 치켜 뜨며 거들었다. 나도 걔들이 물똥을 죽죽 싸대고 파드득 몸을 휘두르는 게 싫다. 고양이는 호들갑은 질색이다. 코점박이 말처럼 우리 고양이 족속은 아무 데나 똥을 싸진 않는다. 나는 그때 노랭이가 '해'라고 했던 말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렇지만 걔들이나 우리는 똑같이 갇혀 있었다. 그 애들은 멀거니 앉아 있다가 흐릿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우리는 몸을 포개고 있다가 눈을 반만 뜨고 걔들을 봤다. 똥을 싸는 것들은 자기 똥은 깨끗하고 남의 똥은 더럽다고 욕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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