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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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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Dec 21. 2019

고양이 R

4화

나와 노랭이, 내 머리를 할퀸 코점박이, 처음 만난 애들을 태운 쇠붙이가 길을 달릴 때는 정신이 없었다. 나는 노랭이 옆구리에 머리를 박고 눈을 꼭 감았다. 쇠붙이 몸은 너무나 차가워 발바닥을 바짝 웅크렸다. 쇠붙이는 늘 부르릉 콰앙~ 화를 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심지어 코점박이조차 쇠붙이가 큰소리로 화를 낼 때는 꼼짝 못했다.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인간은 누구냐고 물었지만 말 잘하는 노랭이는 몰랐다. 용기를 내서 코점박이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녀석은 언제나 눈에 힘을 잔뜩 줬다.      


얼룩덜룩한 털을 가진 녀석은 울지도 않고 말도 안 했다. 밥도 잘 안 먹었다. 뭔가 일그러진 얼굴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다. 내가 말을 걸거나 발로 툭 건드려 관심을 보여도 고개를 돌렸다. 노랭이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킥킥 비웃었다.


_넌, 쓸데없는 일에 신경 끄고 몸단장이나 잘해. 그게 가진 것 없이 먹고살아야 하는 떨거지들이 할 일이야.

_할 일?

_그래, 할 일. 넌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엄마도 모르고. 할 일도 모르고

_난.....그게.....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넌 그런 걸 어디서 알았어?

_그런 건 먹고 똥 싸고 잠자는 것처럼 저절로 아는 거야

_그럼 나도 차차 알게 되는 거야? 엄마도? 뭘 해야 하는지도? 


머리위에서 차갑고 부슬부슬한 게 내리자 몸이 덜덜 떨렸다. 몸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새로 들어온 흰둥이 녀석이 구석에서 토악질을 했다. 노랭이는 저런 것들은 해만 끼친다고 욕을 했다. 나는 또 '해'라는 말을 몰라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병신, 쪼다, 덜떨어진 애새끼라는 놀림만 받을까 봐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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