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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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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Dec 19. 2019

고양이 R

2화

고양이가 하는 짓을 인간이 모르듯이 인간 기분도 고양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애들하고 굶지 않고 춥지 않게 살려면 짐짓 눈치 없는 애처럼 굴어야 한다. 늙은 인간이 짜증을 낼 때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다. 그러나 아직 젖도 안 뗀 애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나는 길에서 더 헤매고 싶지 않다. 이 집 저 집 이 골목 저 골목 어슬렁거리면서 겨우 살게 된 집이다. 이빨이 아드득 부딪친 몹시 추운 날 밥을 찾다가 허탕치고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골목 안쪽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돌아갈 때 낮은 담장 안쪽에 불이 켜진 이 집을 봤다.     

             

사나운 바람을 가르고 나는 힘껏 뛰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눈이 뱅뱅 돌았지만 나는 곧장 젖먹이 애들을 한 녀석씩 물고 이 집 담을 넘었다. 애들은 이제 막 눈을 떼고 엎치락뒤치락했다. 갈팡질팡 양양 소리 내며 품을 파고드는 애들을 안심시키려고 토하기 직전까지 핥아줬다. 내가 문 옆에 뒹구는 널찍한 물건에 비스듬히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핥아주는 모습을 늙은 인간이 우두커니 지켜봤다. 늙은 인간은 퀴퀴한 냄새가 풀풀 나는 폭신한 물건을 가져다 바닥에 깔고 걸걸한 소리로 나를 괭이라고 불렀다. 이 괭이 새끼가 간덩이가 크네, 허참. 우스꽝스러운 소리였지만 싫지는 않아 보였다.  




인간이 바글바글했다. 긴 옷, 짧은 옷, 너덜거리는 옷, 조여 맨 옷, 흙이 덕지덕지 묻은 신발, 바닥이 납작한 신발이 지나갔다. 인간들은 아무데서나 깔깔 웃고 소리소리 지르고 삿대질을 했다. 넋을 놓고 있다가 깜박 선잠에 빠졌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사라졌다. 앵앵 소리가 날 때마다 실눈을 떴지만 자꾸 몸이 축 늘어져서 일으킬 수 없었다.           


몸이 노란 어떤 녀석이 내 배 위로 다리를 척 올려놓고 있다. 짜증이 나서 겨우 밀어내면 녀석은 잠투정을 했다. 우리는 질세라 양양 울었다. 울수록 목이 컥컥 타들어갔다.     

       

_너 목 아프지 않아?

_응, 머리도 아파. 울 엄마가 있었으면 찌찌를 물려줬을 텐데.

_엄마라고?

_엄. 마. 너, 엄마 몰라?

_그게 뭔데?

_야, 넌 어떻게 엄마를 몰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넌 엄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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