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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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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Dec 18. 2019

고양이 R

1화

내 첫 이름은 깜장이었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다. 눈곱을 어떻게 떼어내는지도 모르고 세상 모든 게 무서웠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양양 소리만 내는 거였다.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다. 그저 단 젖내가 그리워서 자꾸 옆 고양이 품을 파고들었다. 엄마가 무엇인지 몰랐다. 큰길 건너 골목에서 눈이 맞은 고등어 녀석이랑 정을 통해 첫애들을 낳았을 때 엄마를 처음 생각했다. 엄마란 낳은 새끼가 춥지 않게 품어 젖을 주고 정성껏 핥아주는 그 무엇이다.     

     

엄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이 집을 곧 떠나야 한다. 낯선 인간들이 찾아와 떠들고 커다란 쇠붙이가 여기저기에서 길을 가로막고 쿵쾅 대는 바람에 아주 시끄럽다. 나에게 밥을 주고 내 애들을 지긋이 바라본 인간들도 문을 다 열어두고 사라졌다. 이 동네에서 오래 지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게 이 동네에 있다. 좋은 날있었고 조금 나쁜 날도 있었고 그저 그런 날도 있었다.


이 집 인간은 머리가 새하얀 인간이었는데 하루도 안 거르고 밥을 줬다. 추울 때는 하루에 두 번씩 따순 물을 떠다 줬다. 오늘은 아~주 추우니까 딴 데 가지 말고 여기서 자아~ 니 새끼들 괜찮쟈? 나는 인간의 거칠거칠한 손바닥에 등짝을 맡기고 꼬리를 세우며 야~아~양 소리를 냈다.         


삐뚜름 걷는 늙은 인간이 깔아준 폭신폭신한 물건에 배를 깔고 누워 나와 내 애들은 추위를 견뎠다. 머리가 새하얀 늙은 인간은 투덜대면서 날씨가 궂은 날에는 큰 문 안쪽으로 우리가 있던 자리를 옮겨줬다. 긴 지붕이 늘어진 그 자리에서 나는 불 켜진 안쪽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럴 때면 다리를 저는 인간이 비틀거리며 밥덩이가 담긴 물건을 바닥에 털썩 놨다.     


매일 좋은 건 아니다. 머리가 하얀 늙은 인간은 툭하면 화를 냈다. 니 새끼들 똥 냄새 때문에 못 살겄다. 에휴 더러워서. 다 내 쫓을까부다. 나는 인간의 변덕이 탐탁지 않았지만 이 꾀죄죄한 신발짝 같은 동네에서 딱히 갈 곳이 없었다. 큰길 저 위쪽에서도 밥이 없어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지금 이곳도 인간이 살지 않는 집이 점점 는다. 큰길 위쪽은 끝이 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집이 우뚝 세워졌다. 한번은 큰길을 건너지 않고 올려다봤지만 까마득해 고개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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