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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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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04. 2020

고양이 R

13화

이게 다 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기운이 쳐졌다. 안 나오는 똥을 끙끙 힘주고 눌 때 털 손질을 하던 코점박이가 내 머리통을 긁었다. 자기 곁에서 똥을 싼다는 게 이유였다. 눈을 부라린 코점박이에게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_그...그....그건 여기가 너무 좁잖아...요

_내 털에 묻히기라도 하면 어쩔겨? 앙! 니 털이랑 내 털이랑 같은 줄 알앗?

_털은 다 똑같은 거 아냐?

_털도 다 달라. 이 멍청아! 힘도 없는 게!

_힘? 그건 또 뭔데?

_힘은 말이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냐 그런 거야! 

_뭘 하는데?

_하고 싶은 거. 힘이 쎌수록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많거든

_마음대로 오줌도 누고 똥도 싸고 할퀴고 남의 밥도 뺏어먹고 그러는 거야?

_어쭈

_힘은 누가 정해?

_그건 힘으로 정해               


나는 어서 힘이 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힘이 팍 들어간 우락부락한 코점박이 눈을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코점박이는 닿을 수 없는 힘이었다. 코점박이를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존경했다. 말은 못 했지만 코점박이 똥 냄새도 구리다. 힘은 달라도 똥냄새는 똑같다. 


이젠 똥을 참지 않아도 된다. 목소리가 걸걸한 인간이 두꺼운 물건에 부실부실한 부스러기를 잔뜩 담아 내 옆에 놨다. 나는 부스러기 위에서 똥과 오줌을 누고 앞발로 근처 부스러기를 살살 긁어모아 덮었다. 노랭이 말처럼 저절로 알게 된 나는 힘을 팍 준 꼬리로 몸통을 팍팍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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