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즈: Jazz

4화. Love walked in

by 또바기

한참을 거리에서 떠돌아다녔다. 어느새 시간은 9시 30분.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이러다가 친구 집은커녕 내 집도 기어서 들어가겠다 싶어,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다섯 번씩이나 미안하다고, 다음 만남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며, 다시 걸었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었다. 고요하고 어두운 골목에서, 목적지를 잃은 나의 발소리는 유난히 더 크게 울려 퍼졌다.


' 터벅, 터벅, 터벅... '


그때였다, 저 멀리 어디선가, 귓가에 간신히 맴도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밌는 놀잇감이라도 발견했다는 듯이 귀를 기울였다. 현란한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이 상상되는 곡. 오스카 피터슨의 'Love Walked in'였다. 마치 짙은 안갯속에서 손을 더듬으며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는 것과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선율이 나를 찾아내고 있었다. 난 단지, 그것에 내 몸을 맡길 뿐이었다. 2분 50초가량의 노래가 끝나기 전 서둘러 그 노래가 새어 나오는 곳을 찾아갔다. 나를 질질 끌던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나에 의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발이 멈춘 끝에는 아무 부연 설명 없이, 심플한 간판이 있었다.


'Jazz Again'


그곳에서 'Love Walked i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황 빛깔의 따뜻한 조명, 재즈 음악, 음악 사이로 삐져나오는 하하호호 웃음소리, 재즈 펍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은은한 불빛 속으로 빠지기 딱 좋아 보였다. 알 수 없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려갔다. 문을 열자, 빈티지 샵에서 들어나 봤던, '딸랑'하는 작은 종소리가 나를 반겼다. 그곳, 재즈 어게인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노오란 조명,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유리잔 소리 그리고,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맞췄던, 그의 푸른 눈동자. 갓 스무 살이었던 나에게 펍은 낯설었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어쩔 줄 몰라하며 구석에 있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렇지만 얼굴에 속마음까지 다 드러나는 게 나였기에, 누가 봐도 경직된 얼굴을 하고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내게 다가왔다. 재즈 어게인에서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던 그가.


'안녕하세요'


그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얼굴 근육을 꿈틀대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는 크게 하하하고 웃었다. 뭐가 웃겼던 걸까. 내가 괜히 긴장한 건가 싶어 부끄러웠다.. 그가 그걸 눈치챘던 것일까, 큼큼하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이런. 죄송해요, 비웃은 건 아니었어요. 저는 이안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전 헤나예요.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뒤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의 나이는 25살로, 그때 나보다 5살이 더 많았다. 더 이상은 아니지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재즈: Ja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