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옛날이야기

반복되는 인연

by 전지시

전생이라지.

조선 어드매쯤, 한양서 멀지 않은 고을.

그 아이는 옆집 살던 도령이었고

나는 양반댁 셋째 규수였더랬지.


돌담 하나 사이에 두고

창가에 나란히 앉아 자수를 놓다

눈길이 부딪치고,

책 읽다 잠시 창밖을 보다 마주치고,

그러다 밤마다 조약돌이 툭툭 담 넘었지.


처음엔 그냥 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엔 돌에 감겨있는 조그만 쪽지,

매끄럽고 정갈한 붓글씨로

“매화 진 자리서 기다리겠소”

고운 문장이 실려 있었더랬다.


나는 어찌나 마음이 두근대던지

자수는 매듭이 엉키고,

서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침소에 들어서도 등불만 꺼지지 않았지.


그런데 말이지,

그 무렵 사또댁에서 혼처가 들어왔고

아버지께선 ‘여인은 제 때 시집을 가야 한다’며

날 꽁꽁 싸서 보내버렸다네.


혼례 전날 밤,

그 애가 마지막으로 담 너머 돌 하나 던졌는데

나는 차마 들은 체 못하고 머리만 빗었다.


그렇게 인연은 끊기고

그 애는 소문 없이 멀어졌다지.


그 후로 수십 년,

다시 그 집 담장 아래 섰을 적엔

이끼 핀 조약돌 하나가

아직 그 자릴 지키고 있었네.


그 돌이

그 애였던가,

아니면

그 애가

그 돌이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벗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