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쓰기

by 전지시

추억이란 건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어떤 순간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고,

지나간 시간보다 더 또렷하게 마음에 머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시간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누구의 말투, 체온, 웃음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조심스러웠다.

새로운 걸 앞에 두고도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그때의 웃음, 그때의 침묵,

그 모든 장면을 흐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기억 위에 그가 남긴 발자국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는 걸 보았다.

선명하고 무심하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모든 시간이 덮여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아직 그 기억을 현재처럼 품고 있었고,

그는 이미 다른 시간들과 사람들로

그 자리를 지나쳐왔다는 걸.

그 간극이

참 조용히, 오래도록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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