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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Jun 16. 2024

기다림, 러닝을 멈춘 시간 동안

스물네 번째 주, 부상 복귀를 앞두고




5월 5일. 어린이날 밤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장을 갖추고 한강길을 달렸다. 영동대교를 지나 성수대교를 왼쪽에 두고 옥수동에 있는 동호대교를 찍고 나서 동쪽 방향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성수대교가 보이면 여기서부터 인도와 자전거 도로의 위치가 바뀌는 곳이라 더욱 주위를 살피며 달리기를 이어가야 한다. 조심해서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발구름의 속도를 낮추던 중, 바로 앞에서 따릉이를 타던(매우 느린 속도로) 사람이 인도로 넘어졌다. 아무런 추돌사고도 없이 그냥 혼자 넘어진 거다. 너무도 느린 속도 덕분이었을까. 다칠 정도로 크게 넘어지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가 넘어진 곳은 다음 발이 내딛어야 할 자리였다. 예측할 시간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순간적으로 자전거와 자전거에서 떨어진 사람을 피해 점프를 했고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역시 준수한 순발력을 가진 탓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 순간. 땅을 디딘 오른쪽 발이 얕은 연석의(잔디를 심어놓은) 끝을 밟으며 '뚜둑'소리와 함께(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였을 거다) 바깥쪽으로 꺾여버렸다. 준수한 순발력에 감탄했던 게 불과 0.3초 전이었을 거다. 경험상 적지 않은 부상임을 직감하고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부상 부위를 살폈다. 


'젠장... 로드 러닝은 고사하고, 한참 재미를 붙이던 트레일 러닝까지 날아가 버렸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부상 부위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4.5km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다음 날 발을 딛기도 힘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무슨 정신으로 걸어왔던 건지 모르겠다. 러닝 중에 분비된 도파민 덕분에 통증을 못 느꼈을지도.





부상 3일 후.

놀라웠다. 벌써 멀쩡하게 걸을 수 있었다. 비록 통증은 느껴졌지만 겉으로 보기엔 불편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적은 나이는 아니니 빠른 회복의 이유가 젊음은 아닐 테고, 휴식과 냉찜질을 열심히 한 덕분이었을 거다. 오랜 시간 다양한 운동을 꾸준히 했던 영향도 있었을 테고. 빠르고, 오래 걷기엔 버거웠지만 2km 정도는 여유 있게 다닐 수준은 되었다.




부상 15일 후.

부상당한 지 2주 차에 길을 걷다 잠깐 뛰어봤다. 사실 마음 먹고 뛴 건 아니고 코 앞에서 떠날 버스를 그대로 보내기 싫은 조급함 때문이었다. '오! 뛰어진다' 그랬다. 오른쪽의 발목 근육이 체중을 온전하게 받아주는 걸 넘어서, 앞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추진력까지 갖추게 된 거였다. 아무래도 2주 차부터 세라밴드와 한 발 서기로 재활을 열심히 한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생각보다 회복이 빨라 셀프 칭찬을 했다. '이 정도면 3주 차에는 로드로 복귀할 수 있겠는데?'라는 기대와 함께...




부상 한 달 후.

급격히 상승하던 회복 속도가 20일째부터 지지부진한 횡보에 들어섰다. 무리해서 걷는 날이 꽤 있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트래픽이 심한 서울 시내 운전이었다고 믿고 있다. 지독하게 막히는 올림픽대로와 영등포 로터리에선 발목 통증이 유발되는 각도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왕복 3시간 반을 운전하고 돌아오니, 순조롭게 회복되던 부상이 2주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부상 복귀를 앞둔 지금.

한 달 하고도 10일이 지났다. 발목 통증이 완벽히 나아지진 않았지만 조깅 속도로 뛸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다.(산책하면서 조금씩 테스트를 해봤다) 오늘, 혹은 내일 정도에 로드에서 복귀 하려고 한다. 우선은 10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전에도 부상으로 3개월 가까이 쉰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과욕으로 인한 근육 부상이 원인이었고, 지금은 불의의 사고가 원인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꾸준히 뭔가를 하던 사람이 자의가 아닌 이유로 그것을 쉬게 된다는 건 꽤 많은 평정심과 인내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보면 러닝을 하지 못해 힘든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러닝을 하는 시간 동안 즐기며 사랑했던 감정을 참아야 하는 게 훨씬 힘들다.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다림이라는 게 늘 이렇다. 막상 옆에 있을 때 모르던 소중함의 크기를 알려준다. 어떤 이유든 기다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의지했던 것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가꾸는 시간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곧, 기다림을 끝낼 러너의 한 주는 이런 생각들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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