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주, 나를 대하는 모습으로 남을 대할 때
우리는 자기를 대하는 모습 그대로 남을 대한다고 한다.
자기를 대하는 모습 그대로 남을 대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와닿았을까. 내 인간관계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정말 디테일하고 타이트한 것 같아" 나와 자신과의 관계에서의 상황을 묘사한 말이었는데, 칭찬보다는 고단함을 풀어낸 말로 들렸다.
사실이었다. 세상 누구든 똑같이 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사람마다 경계의 선을 설정한다. 그 후 그 영역에 맞게 관계 설정을 하는 편이다. 이때, 디테일함과 타이트함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본연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지만(내겐 마음을 연다는 말과도 같다) 반대로 그만큼 상대에게 원하는 편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대하는 모습으로 상대에게 원하고 있던 것이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봤다. 타인을 대하는 행동 중 실망스러웠던 건 없었는지도 살펴봤다. 많았다. 모두 풀어내기가 부끄러울 만큼 정말 많았다. 그들도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을 텐데,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내 방식만 강요했던 것이 분명히 있었다. 물론 내 딴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어서 나름 참아볼 만큼 참다가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을 존중하지 않고 지적만 한 것이 되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이 모든 게 그동안 나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벌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왜 너그럽지 못했을까. 타고난 본성이 그럴 수도 있고 성장 과정에서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두 가지 모두 영향을 미쳤겠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지나친 충고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을 겸손 혹은 초심이란 행위와 동일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성장하는 동력으로 활용한 적도 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에 쉽게 안주하는 것이며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오류로 범벅된 편협한 생각을 나에게 강요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 전보다는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래전 책에서 읽은 짧은 한 토막의 글과 얼마 전 친구의 이야기가 다시 나의 미숙함을 일깨워줬다. 아직 나는 조금도 내려놓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에게 너그럽지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자칫 나태해질까 봐) 우선 해보려고 한다. 언제나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건 진심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