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피싱이구나, 싶었다. 으레 주에 네댓 번 정도 걸려오는 어처구니없는 피싱이리라. 때로는 법원이 되기도 하고, 구청이 되기도 하며, 각종 공공기관이 되더니 오늘은 경찰서인 건가 했다.
하지만 통화를 할수록 이전에 받아왔던 수화기 너머의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던 목소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아들이 경찰서에 갈 만한 애는 아니라서요. 바쁘니까 전화 끊겠습니다."
"어머님, 지금 드리는 전화 피싱전화 아닙니다. 핸드폰에 보이시는 전화번호 인터넷에 검색해 보셔도 됩니다. 여기 서울 00구 경찰서구요, 아드님이 연세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다니고 있는 김하준 학생 맞죠? 아드님이 아버님 전화를 먼저 알려줘서 전화드렸는데, 전화 안 받으셔서 어머님 전화번호 다시 받고 연락드리는 거예요. 아드님이랑 통화라도 해 보셔야 믿으시겠어요? 빨리 와 주셔야겠어요."
평소의 피싱 전화 속의 어눌한 말투와는 다른 똑 부러지고 단호한 말투에 이게 진짜인가, 싶을 무렵. 수화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하준이 맞아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잘못을 한 게 없지만 그냥 제 갈길 가는 경찰차만 보아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성정의 내가, 내 발로 혼자 경찰서라는 곳을 들어갈 수는 없었다. 거기다 나는 지금 우울증 환자가 아닌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회의 중이라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 당장 퇴근해 줄 수 있겠느냐 물었고, 남편은 차를 몰고 집으로 와 나를 데리러 갈 테니 꼼짝 말고 기다리라 일렀다. 실로 몇십 년 만에 남편이 듬직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도착한 경찰서 입구. 우리나라 영화 진짜 잘 만드는구나, 싶게 영화에서만 보던 풍경이 눈앞에 똑같이 펼쳐졌다. 이 장면을 분명 어디서 봤는데, 베테랑? 청년경찰?
그렇잖아도 등이 굽은 하준이 더욱더 새우처럼 등을 굽히고 어느 경찰관 앞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하준은 내가 자랑스러워 마지않았던 학교 과잠바를 입고 있었기에 한눈에 들어왔다. 하준의 주변으로는 하준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네댓 명 더 있었고, 누군가는 부모가 곁에 있었으며 누군가는 아직 부모가 오지 않았는지 홀로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하준을 담당하는 듯한 경찰의 앞에 가 우리가 이 아이의 부모임을 일렀다. 아직 하준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어쩐 일로 이런 험한 곳을 왔는지 알 길은 없지만, 경찰관 앞에서는 자연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맞이한 경찰관이 우리가 숨도 추스를 틈 없는 새에 쏟아낸 말들은 실로 믿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난 길었던 그의 말을 단순 요약하며 물었다.
"지금, 그러니까 이 애가, 우리 애가, 지금,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그것도 여기 애들이랑 단체로?"
나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에 주변에 앉아있던 하준과 공범으로 보이는 아이들, 그리고 그의 부모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 있는 부모들 모두 잔뜩 화가 난 듯 보였다. 하준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였고, 경찰의 말에 따르면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는 공범이었다.
"어머님, 목소리 낮춰주세요. 설명드렸듯이 김하준학생과 여기 있는 친구들이 딥페이크 기술로 음란영상물을 만들었어요. 음란영상물을 만든 것은 성착취물을 생산한 것으로 성범죄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말하고 있던 경찰관의 설명이 채 끝나기 전, 경찰서의 왼쪽 구석에서 화가 잔뜩 난 채로 팔짱을 끼고 있던 다른 학생의 부모로 추정되는 엄마가 큰소리를 치며 대응했다.
"아니! 경찰 아저씨는 어릴 때 야동도 안 봤어? 고작 친구들끼리 야동 돌려 본 거 가지고 이 난리를 칠 게 있냐구요! 범죄는 무슨 범죄야. 우리나라 남자 중에 야동 안 보고 큰 사람 있냐고! 오히려 그게 더 문제 있는 거 아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보이는 옷들을 둘러멘 그 여자의 말을 듣자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틀린 말은 없는 것 같았다. 사회에서 한 자리 할 것처럼 말끔히 차려입은 그 여자의 똑 부러지는 말이 절로 신뢰가 갔다. 그래, 당신은 야동도 안 보고 컸나?
경찰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리고 머리가 아프다는 듯 볼펜 뒤축으로 관자놀이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아, 저 아줌마가 아까부터 진짜. 아줌마, 딥페이크 몰라요, 딥페이크? 단순히 야동 만드는 회사가 만든 야동 보는 거랑, 야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서 배포하는 거랑 어떻게 같아요? 아줌마 아들들은 야동을 그냥 본 게 아니라, 만든 거라고! 그것도 불법으로! 요즘은 성착취물 영상을 본 것만으로도 처벌받게 될 수 있다는 신문기사도 본 적 없어요?"
딥페이크?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야동을 만들었다'라는 경찰관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뭔가 죄를 저지른 것 같긴 한 느낌이 들기도. 그러자 아까의 그 아줌마 역시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전혀 관련 없는 여학생이 아니라, 여자애들이 먼저 사진을 줬을 거 아냐! 원인제공 아냐? 그걸로 젊은 남자애들이 호기심에 궁금해서 이것저것 조금 얄구진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그렇게 범죄라는 거야. 아저씨 때야 딥페이크 기술이 없어서 안 해본 거지 지금은 이런 기술이 있다는데, 똑똑한 애들이 새로운 기술이 궁금해서 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아저씨, 얘네 다 명문대생이야. 앞길 창창한 애들을 별 시답지 않은 일로 방해할 일 있어? 여기 내 남편이 변호사야, 법을 알면 우리가 더 잘 알지, 당신이 더 잘 알겠냐고!"
당최 누구의 이야기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경찰관 아저씨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명품아줌마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거기다 변호사라니, 더 신뢰가 갔다. 더군다나 명문대생인 내 아들의 앞길이 범죄자로 낙인찍힌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너무 아찔했다. 그럴 순 없었다.
경찰관 아저씨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아줌마와는 더 이상 대화 할 필요성이 없다는 듯이 의자를 아예 우리 쪽으로 확 제껴 이제는 내 옆의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법전만큼 두꺼운 A4용지의 무언가를 건네 남편에게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아까의 그 아줌마보다야 100배는 순종적인 남편의 기세에 경찰관은 신이 난 듯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귀가 얇고 우유부단한 남편이 저 경찰관에게 홀랑 넘어가 하준을 범죄자로 냅다 인정하는 꼴을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A4용지 묶음을 읽고 있던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여보, 경찰관 말만 너무 믿지 마. 저 아줌마가 저러는 거 보면 저쪽 말도 맞는 것 같아. 변호사라잖아."
"가만있어."
남편은 답지 않게 무게 잡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가만있어? 누가 누구한테 지금.
"가만있긴 뭘 가만있어. 내가 얘 엄만데. 당신은 지금 앞길 창창한 애 앞날이 걱정되지도 않아? 그리고, 얘가 어디 뭐 그런 짓 할 애야? 요즘엔 오히려 남자애들이 누명 쓰는 경우가 많대. 자세히 알아봐야지, 어떻게 경찰 말만 믿어."
"......."
어쭈? 이젠 대답을 하지도 않네. 대답 않는 괘씸한 남편에게 좀 더 소리 높여 얘기했다.
"당신, 지금 하준이가 이뤄 놓은 게 쉽지 않았다는 거 알지? 고작 이런 일로..."
남편은 말없이 나에게 두꺼운 A4용지 중 한 장을 건네주었다. 종이 위엔 나체의 여자가 침대 위에서 요염한 포즈로 낯 뜨겁게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낯선 몸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딸, 하진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