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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by 융글

사태파악이 되지 않았다.

내 딸 하진이의 얼굴은 귀염 상에 몸은 그리 마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볼륨이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물론 중학생 때 사춘기가 온 이후로 온전히 벗은 하진의 몸을 본 지 꽤 오랜 시간이었지만 하진이 정말로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사진 속의 몸을 가졌더라면 옷을 입고 있어도 여기저기가 울룩불룩 난리가 나서 단박에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하진은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표준 고등학생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딥페이크가 이제 뭔지 알 것 같았다. 옷 벗기 좋아하는 다른 여자의 볼륨 넘치는 몸에 내 귀한 딸 하진의 얼굴을 갖다 붙인 것이다. 이런.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빌어 먹을 짓을?

하진의 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어도 그것은 꼭 하진의 몸인 것처럼 하진의 목 아래에 들러붙어 있어 진짜 하진인 것만 같았다. 구역질이 날 것 같고 열이 뻗쳤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아까까지만 해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우리 앞의 경찰관은 얼굴이 불타오르다 못해 터질 듯 한 날 알아차렸는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가짜 하진이의 몸뚱이 사진을 들고 있는 나를 슬쩍 보더니 말을 보탰다.

"따님 사진 맞으시죠? 여기 하준 학생이, 동생 사진을..."

"뭐? 하준이 너! 니가? 하진이 사진으로? 이 미친놈이!"

꼽등이처럼 곱아진 채로 얼굴 한 번 들지 않던 하준의 등을 가차 없이 패버렸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아닌, 꼽등이보다 못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날 가열차게 배신해? 이따위 짓으로?


패도 패도 모자랄 것 같아 있는 힘 다해 계속해서 후드려 팼더니 남편과 경찰관이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해, 그만해. 이런다고 될게 아니잖아."

"아이고 어머님, 애 잡다가 어머님이 쓰러지시겠어요. 조금만 진정하세요."

애를 잡아도 모자랄 것 같았다. 이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은 우리 하진의 인생도 망치려고 하고, 내 인생은 이미 망쳐버렸다. 이 범죄자 놈을 키우느라 내 청춘의 시간들이 흘러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니 더욱더 분통하고 화가 치밀었다. 경찰서 안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지만,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구나 싶었으니까.

결국 내 힘이 다 해서 저 커다란 꼽등이를 때려죽일 순 없었다. 힘이 쭉 빠져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고, 남편이 부축하여 그의 어깨에 기대 숨을 골랐다. 경찰관 역시 이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제자리에 앉아 말을 꺼냈다.

"어머님,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셔야죠. 일단 하준 학생의 말로는, 사진을 제공만 했지 자기는 제작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좀 더 알아봐야 되는 것도 있고, 하준 학생 역시 단톡방에 포함되어 있었고, 영상물을 공유하고 소지하기는 했었기 때문에..."

귀가 먹먹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남편의 어깨에 기댄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어린 하준이 갓 태어난 하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동생이 생긴 게 신기한가 보지, 기특한 마음이 일렁인다. 첫째를 키울 때는 모든 게 조심스러웠는데, 둘째는 발로도 키운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하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겠지만 하준을 키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쉬워진 건 분명하다. 하준에겐 내 이 한 몸 망가지고 힘들더라도 아이를 위해 모유만 고집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하진은 진작에 분유 수유를 했다. 제 동생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하준을 보며 하진의 분유를 타는 중,

"으앙!"

잘 울지 않는 하진이 울어 찾아가 보니, 새하얀 얼굴에 까만 눈자위 위아래로 손톱자국이 길게 생겼다. 하진의 작은 손에는 손싸개가 둘러져 있다. 놀란 마음에 하준을 쳐다본다.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만감이 교차했고, 엄마에게 사랑을 뺏겼을 마음인 하준을 좀 더 보살펴야겠다 생각한다.



초등학생이 된 하준과 하진이 들판을 뛰어다닌다. 애 둘을 키워놓으니 저들끼리 잘 놀아 마음이 편하다. 잠시 눈을 떼려는 찰나, 둘 다 얼굴이 일그러진 채 나를 향해 걸어온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둘은 재판장에 선 변호사처럼 각자 자기의 변호를 하며 누가 잘했니 잘못했니를 동시에 나에게 보고한다. 늘 그랬듯 별 일 아니다. 하지만 근래 부쩍 친구들 사이에서 움츠려 지내는 하준이 걱정된다. 집에서라도 기를 살려줘야지 싶다. 하진에게 오빠한테 먼저 사과하라 이른다. 하진은 속이 깊은 아이라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하진이 울먹이며 마지못해 오빠에게 잘 못했다 사과한다.



중학생이 된 하진과 고등학생이 된 하준이 함께 있는 집이란 폭풍전야가 따로 없다. 각자의 방에서 있는지 없는지 처박혀 있다가 밥때가 되어서야 기어 나오는 하루들. 나는 또 그 밥때를 위해 분주히 식사를 준비한다. 남편은 오늘도 야근이니 식탁에는 3인분의 밥만 차려낸다. 식사 준비가 끝나고 아이들을 부른다. 각자의 방에서 유령처럼 슬슬 기어 나온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말없이 숟가락을 든다. 죄 오빠 좋아하는 반찬뿐이라며 하진이 투정한다. 편식하는 하준과 골고루 잘 먹는 하진이기에 하준에게 맞출 수밖에 없는 식탁사정을 굳이 하진에게 고백하진 않는다. 그냥 주는 대로 먹으라 이른다. 하진은 뭐든 골고루 잘 먹으니까.



우리 집 화장실 바닥에 누군가 쓰러져있다. 나다. 며칠 전의 나. 쓰러졌을 때의 나. 내 모습을 멀찌감치서 내려다보자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저 정도였나 싶게끔 안타깝다. 저러다 죽겠다, 싶을 때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진이다. 가방을 휙 벗고 터덜터덜 거실을 향하던 하진이 화장실로 고개를 돌려 쓰러진 나를 발견하다. 나를 세차게 흔든다.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왜 그래 엄마.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울음이 섞인다. 긴급전화를 걸고 구급대원이 오기까지 내 옆을 지킨다. 날 품에 안고 꼭 잡은 내 손을 놓지 않는다.

구급차 안에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는지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하진이다. 오른손으로 전화를 걸고, 왼손은 내 손을 계속해 꼭 잡고 있다. 아빠, 엄마가 쓰러졌어요. 오빠, 엄마가 쓰러졌어.

장면이 바뀐다. 술집이다. 하준이다. 몇 안 되는 안주와 그와 대비되게 가득 쌓인 빈 술병들이 상에 그득하다. 낄낄대며 친구들과 무언가를 돌려보던 하준이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미간을 찌푸리며 수신한다. 왜, 나 지금 밖이야, 아빠한테 전화하면 되잖아, 알았어, 너 알아서 해. 10초 채 안되게 용건을 끝낸 하준은 다시 자신의 핸드폰 속 무언가를 보며 낄낄대고는 친구들에게 공유한다.



"... 미친놈..."

"뭐? 어, 당신 깼어? 괜찮아?"

"... 미친놈, 미친놈. 아니, 미친년. 내가 미친년이지."

"왜 그래, 당신. 괜찮아?"

눈을 뜬 나는 어쩐 일인지 경찰서 출입구 쪽 의자에서 남편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당장 하진이가 보고 싶었다. 아니, 볼 수 없었다. 보고 싶지만 볼 면목이 없었다. 이런저런 복잡해진 감정과 머리를 뒤적이는데, 눈앞에 누군가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하준 학생 부모님이시죠? 저기 있는 박선우 엄마예요. 사정이 이러니 형식적인 인사는 차치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아직 형량이 나올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당연히 항소를 할 예정이에요. 사실 이런 케이스를 저희 남편 친구가 전문이라 물어봤더니 어렵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종종 있는 경우래요. 지인이라 수수료는 다른 곳 알아보시는 것 보다 훨씬 합리적일 거예요. 저기 계시는 다른 부모님들도 같이 진행하자 동의하셨구요, 같이 가실거죠?"

몸을 일으켜 세우고 손으로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기며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올려다보았더니, 목소리 높여 소리 지르던, 남편이 변호사라던 명품 아줌마였다.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쳐다보자니 그 여자는 잠시간 움찔거렸다. 아마 남편 역시 같은 표정이었으리라. 마지만 이내 다시 당당한 얼굴이 된 그 여자는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아까 소리치실 때 이야기 들었어요. 아드님이 여동생 사진을 공유했다고요. 따님 사진이 나왔으니 평정심을 잃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럴수록 잘 생각하셔야 돼요. 따님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건 없어요, 그렇죠? 실질적인 해를 입지도 않았고, 본인의 사진이 그렇게 쓰였다는 사실도 아마 모를 거예요. 그런데 지금 아드님은 달라요. 아드님이 성범죄로 형을 받는 순간, 그 피해는 막심해지는 거 아시죠? 저기 연세대 잠바 입은 친구, 맞죠? 저희 애는 서울대예요. 애들이 공부 얼마나 해서 여기까지 오셨는지 더 잘 아시잖아요. 별 일 아닌 걸로 앞길 창창한 애들 미래 막을 순 없잖아요, 그렇죠?"

"미친년..."

"네? 뭐라구요?"

"당신도 미쳤어."

"뭐라구요? 지금 저한테 욕 하신 거예요? 어이가 없네, 진짜. 아줌마, 지금 제가 아줌마 아들 도와드리려고..."

"돕긴 누굴 도와! 범죄자 새끼들을 왜 도와! 앞길이 창창하긴 뭐가 창창해! 공부 머리 저따위로 쓸 거면 감옥에 쳐 들어가는 게 낫지!"

딸 하진의 이야기와 당치도 않는 항소며 서울대 어쩌고의 이야기에 흥분해 버린 나의 손을 남편이 꼭 잡아 쥐었다.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내 입을 적극적으로 막아서진 않았다.

자신의 선의를 고맙다고 넙죽 받아먹을 줄 알았던 우리가 별안간 공격적인 태세로 대응하자 상대는 꽤 당황한 듯 보였다. 따박따박 잘만 말하던 그 여자는 우리가 제 편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는 게 힘들었는지 타격이 전혀 없는 빈정거림을 흘린 채 자리를 떴다.

"못 배워먹은 사람들이네."



"...갈까?"

남편의 목소리에 고개 돌려 그제야 그를 정확히 바라보니 세상 온갖 피곤과 시름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꼽등이처럼 굽어 있는 하준의 등을 보고, 다시 주름 가득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고, 집에 혼자 있을 하진을 떠올렸다. 자리를 털며 일어나 말했다.

"가자,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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