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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Jun 16. 2020

찻잔 명상/고소공포증 극복/벌레를 바라보는 의식의 변화



6월 12일 아난다 선생님과 함께한 첫 수련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관계를 통한 '내면 의식 성장' 그리고 '서로 도움'에 대한 중요성과

직업적 변화, 개인적 발전을 위한 노력 등... 생활 의식에 집중하며

매일매일 수행정진하는 중입니다.


지난주 방광염이 생겨서 약을 먹다 보니 부종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월, 수요일 수련은 병원에 가야 해서 참석할 수 없었기에, 금요일 수련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라도 왔습니다.

약 때문인지 위가 많이 쓰리고 울렁거렸고, 다리가 너무 부어 걷다가 그대로 멈춰 서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려다가 '의식과 몸의 연결성'에 대해 생각하며, 이 상태를 넘어설 현명한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그냥... '속이 편안하다, 다리가 깃털 같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 센터까지 걸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아주 조금씩 속은 편안해졌고, 드라마틱하게 부기가 빠지진 않았지만,

모래주머니를 발등에 올린 것 같았던 무거움은 경감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온해진 마음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순간에 작은 지혜를 낼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정수리를 바닥에 대는 자세가 있었는데, 마치 내면의 활성화 버튼을 누른 것 같은 상태로... 그때부터 수련이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명상 중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나의 잘못 때문에 부끄러웠거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 소외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던 때,

사랑하던 이에게 거절당했던 때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수치스럽고 괴롭고 슬프고 속상한... 곰삭은 감정들이

올라왔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숨을 보내고 정화하는 동안 거쳐가고 빠져나가는 감정들이 초반에는 뜨거움이 커서

눈물을 흘릴 때도 흐느낌을 참아야 할 정도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요가 수련이 진행되면서 차차 또 다른 의식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의식과 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정보의 차원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생명은 즐거움만이 계속되길 원치 않고 칠정을 다 누리고 싶어 한다'는 문장에 눈이 커지며 놀라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리석음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고, 그 뒤로 여러 감정들을 그냥 우리가 먹는

음식의 오미처럼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떠올리면서, 수련 중에 떠오른 몸의 느낌들과 감정의 변화를

천천히 다스릴 수 있었고, 이성을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이나 현대인의 의식 지도 등의 서적에서 보았던 표를 가끔 참고하면서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느껴보곤 하는데, 이날 수련을 하는 중에 이러한 의식의 스펙트럼을 물결처럼

다양하게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요가 수련 이후에 명상을 할 때는 또 다른 경험이 있었습니다.


몇 달 전 명상을 하다가 본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전 명상 속에서 저는.. 셀 수 없이 많은 찻잔들이 쌓여있는 한 공간에 있었고,

손가락에서 반지 하나가 빠져서 그 수많은 찻잔 중 어느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찻잔을 헤치며 반지를 찾는 게 아니라 잔에 차를 한잔씩 따라 마시면서 반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끝내 반지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반지를 찾는 행위'.. 라면 연인,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다는 것인가 하는 정도의 생각에서 마쳤던

명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찻잔에 딱 한잔에 놓여있었고, 그 속에 반지가 들어있었습니다. 늘 끼고 다니는

은 묵주반지였는데, 그 반지를 자세히 보니 점점 금색으로 빛이 나고 보석이 달린 반지도 되었다가

어느 대관식에서 쓰이는 귀중한 왕관의 모양이 되고 소용돌이치는 우주의 은하의 모양 같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명멸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이 너무 부셔서 더 눈을 꼭 감았는데, 그 찻잔, 반지, 왕관, 우주의 이미지는  모두

사라지고 그저 떠있는 빈 공간에 깃털처럼 가벼운 의식 표면 위로... 제가 찾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반지에서 왕관, 빛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보인 그것은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깨달음과 진리, 존재의 깨어남,

더불어서 함께 조화로운 삶, 하나 됨 등... 보다 영성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삶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라고 느꼈습니다.


명상 중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보았는데, 그것은 수련하던 날 새벽에 꾼 꿈의 연장선에 있던 영상이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고소공포증이 심한데도 웬일인지 수직으로 상승하는 한 의자에 앉아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멈추었는데, 그 높이가 구름이 발아래 보일 정도였고, 웬만한 산 높이 정도였기에 아찔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는 걸 느꼈고, 철저히 혼자라고 자각했습니다. 그 의자는 바람에 흔들리기도 했고, 저는 팔걸이를 잡을 손이 없었습니다. 그건... 왼손에는 검은색 봉지 오른 손에는 뭔가가 쓰여 있는 중요해 보이는 종이 원고가 들려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팔걸이를 잡아 땅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검은 봉지 속에 종이뭉치를 집어넣는데, 초속 0.1 mm의 속도로 천천히 온 정신을 집중해서 넣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안간힘을 다해 성공을 한 뒤에는 비닐을 왼 손목에 걸고 양 손잡이를 잡았고, 서서히 아래로 하강하는 의자에서 안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느꼈습니다. 이 꿈속에는 바로 옆에 똑같은 높이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저와는 달리 여유롭게 앉아 경치를 감상하는 듯했습니다.>

명상 중에 <이 꿈>이 다시 떠올랐는데, 내 안에 있는 가장 큰 두려움마저도 극복할 용기를 가지려면,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의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저릿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제 옆에 있던 그 사람의 모습이 곧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될 일은 이런 합일된 의식 상태의 경험이 다시 한번 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체험에 사로잡히지 말고 다시 나와서... 그냥 하루하루를.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친구를 만나거나 연인을 만나거나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보다 수행정진하면서 사는 것이 나를 발견하며 살고 명상하는 삶이라는...

자그마하면서도 귀한 결론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토, 일요일 평창으로 캠핑을 다녀왔는데, 무척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오는 물체나 벌레를 무서워하고, 높은 곳을 두려워해서 자주 놀라고

비명을 지를 때도 많았는데, 명상의 도움이 삶에 적용되어서 인지, 텐트를 치면서 손가락에 벌이 물렸는데도

크게 놀라지 않았고, 한 번도 손으로 잡아보지 못한 자연 속의 다양한 벌레들을 손으로 잡아서 텐트 밖으로 살려 보내주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한 치유의 숲에 있는 높은 '홀로 바위'라는 곳에도 성큼성큼 걸어가서 편안히 앉아서 경치를 바라보았는데, 함께 간 선생님도 제가 평소에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놀랐고, 제 스스로도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 신기했던 체험을 했습니다.


수련이 수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을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경이로움을 주고 있어

매일 오늘을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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