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는 일은 조금 특별한 일입니다
오늘도 수십 통의 편지가 책상에 쌓여간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우체부 기사님이 편지를 가져다주신 게 손에 꼽을 정도인데, 요즘은 매주 두툼한 편지 뭉치를 건네받는 게 일과가 됐다.
때로는 풀로, 때로는 테이프로 잘 봉해진 편지봉투를 뜯을 때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봉투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다. 오늘은 어떤 아이들이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요즘 세상에 아나운서가 편지를 뜯을 일이라곤 팬레터여야 정상(?)이겠지만, 놀랍게도 모두 청취자 사연이다.(물론 가끔 개인적인 편지도 있긴 하다.) 매주 수백 통에 달하는 이 자필 사연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데 사연 선정에 대한 열의는 철파엠과 컬투쇼 등 인기 라디오 방송 저리 가라다.
왜 자기 사연은 뽑아주지 않느냐며 삐지는 일은 다반사.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닌지 다른 친구를 편애하는 건 아닌지 하소연하는 탓에 사연을 선정하는 일은 역대급으로 고된 일이다.
이전에 일하던 방송국에서는 여느 방송국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문자, 카톡, 그리고 유튜브 댓글 등을 통해 청취자 사연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은 디지털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에 오래전 라디오만이 가지던 아날로그 감성이 현재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첫 출근 날, 앞으로 방송국에 도착하는 손 편지를 분류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날로그 아날로그’ 노래를 부르더니 드디어 과거로 회귀한 것 같아 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는 후문.
그나저나 왜 이곳이 아날로그 시스템이냐고? 그렇다. 여기는 세상과 단절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방송국이다. 범죄를 저질러서 사회로부터 고립된,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방송을 만드는 곳이다.
나는 교화방송 아나운서다.
그렇다면 왜, 내가 너희를 이곳에서 만나게 됐을까?
조금은, 아니 어쩌면 조금 많이 다르고 특별한 아이들과 만난 이유를 나는 아이들에게 전할 글을 쓰며 찾아가고 있다.
나에게 조심스레 털어놓는 그들의 하루, 그들의 생각, 그들의 고민들이 여느 청소년들과 다름없어 놀랄 때가 많다. 오히려 밝지 않을지도 모를 자신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한 명의 어른으로, 때론 언니이자 누나가 되어 힘을 북돋아주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하는 글은 대부분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은 그렇게 막살아도 되는 게 아니라고. 인생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인생은 조금 더 ‘잘’ 살아볼 가치가 있는 거라고 말이다.
비록 스스로 현명한 어른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나의 글과 말이 인생을 다시 잘 살아보고픈 마음을 갖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진심이 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쓴다.
그게 이곳에서, 우리가 만난 이유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