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융융이 Jun 04. 2017

한강에 가다

초원의 어미 맹수

한강에 갔다. 날씨가 좋더라.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초여름의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탱탱볼을 사서 아이들이 뛰어논다. 던지고 받고 볼 하나로 즐겁다. 부쩍 자란 아이들이 천 원짜리 4장을 들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 야무지게 거스름돈도 잘 챙겨 온다.


“영수증은?”

“어? 영수증 안 준데요.”


다음부터는 영수증 받는 것도 더 챙기도록 해야겠다. 잠이 들었다. 바람이 부는 시원한 강가에서 눈이 감긴 줄도 모른 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아주 크고 가는데 찢어지는 소리. 핸드폰의 음악을 크게 틀어두었다. 트와이스의 Signal이 들린다. 그리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얘네 노래 진짜 못하지 않아?”


그러면서 크게 따라 부르는 노래. 참 못 부른다. 바로 옆에 텐트에서 음악, 따라서 부르는 노래와 수다가 들린다. 술 안 취했다며 큰 소리로 취한 걸 티 내는 중이다. 누가 봐도 취했는데, 자신만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춤도 춘다. 한 사람이 춤을 강의하나 보다. 이렇게 추는 거잖아. 나 춤 OO춤도 추고, XX춤도 추잖아.


젊은 여자 네 명이다. 자유분방한 스타일인 것 같다.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는데, 쓱 보더니 다시 하던 대로 노래 부르고 떠든다. 깜빡했다.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미러형이라 아마 내 눈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나 혼자만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나와서 짐을 정리한다. 텐트를 접으려 하는데, 이번엔 싸이 노래. I Luv It을 부른다. 네 명이 동시에 합창을 한다. 후렴구의 클라이맥스.


아이 러빗. 아이 러빗.......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다. 나는 무척 이성적인 편인데, 결국 감춰둔 본성을 주체할 수 없다. 초원에서 무리 지어 으르렁대는 육식동물들 사이로 홀로 뛰어든 맹수. 그들에게 맹렬히 다가갔다. (물론 난 선글라스를 여전히 낀 채였고, 모자도 쓰고 있었다. 익명성에 숨어서 실행에 옮긴 것일런 지도 모르겠다.)


“저기요.”


무리들이 쳐다본다. 그중 우두머리 짧은 검은 머리의 여자가 묻는다.


“네?”

“저 어차피 지금 갈 건데요. 좀 많이 시끄럽거든요.”

“네......”


황당해하는 무리들, 그 얼굴을 순간이지만 하나씩 눈에 담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너는 왜 난리냐, 네가 뭔데. 뭐지? 다양한 표정이다. 그러든 말든, 유유히 다시 돌아와서 짐을 챙겼다. 잠시 잦아드는 듯. 무리들은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이내 곧 다시 떠든다. 아까보단 조금 낮은 소리. 하지만 여전히 핸드폰의 음악, 수다. 적어도 노래를 따라 부르지는 않는구나. 째려본다. 네 명이 동시에 한 곳을 응시하는 중이다.


“에이 여기 째려보잖아.”

“보라지. 나는 한점도 잘못한 것이 없어. 사실만을 말했을 뿐. 화도 안 냈어.”


남편의 작은 책망이 있었다. 우리 아이의 탱탱볼이 무리들에게 굴러갔다. 막내가 공을 가지러 그 앞으로 가는데, 한 여자가 말을 한다.


“야, 온다. 와.”


맹수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이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새끼를 건드리면 미친 맹수가 되는 수밖에.


“이리와! 다른 사람 피해 주는 그런 매너 없는 행동 하면 되니? 엄마 짜증 나서 여기 못 있겠으니까 빨리 가자!”


6살짜리 맹수의 새끼는 자각이 없다. 그렇지만 역시 맹수다. 천진한 목소리로 묻는다.


“왜요? 여기 너무 시끄럽게 해서요?”

“어, 너무 매너가 없어서 가야겠어.”


조금씩 소리가 커질 때마다 들으라는 듯 아이에게 훈계하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 피해 주는 행위는 못 배운 거 티 내는 거야. 어디 가서 그런 짓 하면 절대 안 돼. 도덕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다 꺼냈던 것 같다. 무리의 소리가 커질 때마다 목소리를 키웠다. 서로 경쟁하듯.


유난히 오늘따라 텐트가 잘 접히지 않는다. 접는데 모든 시간을 다 쓴 것 같다. 이내 핸드폰 소리가 사라졌다. 무리들이 모두 잠들었다. 깨진 흥은 다시 돌이키기 쉽지 않다. 억지로 흥을 내어보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자는 것을 택했나 보다.


“나 같으면 안 그랬을 것 같아.”

“내가 이름이 문제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 어쨌든 조용해졌잖아. 흥이 한번 깨지면 원래 살리기 힘든 법이지. 그리고 나 아줌마야. 저런 기싸움 잘해.”

“그래, 어련하겠냐.”


유쾌한 기분을 갖고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용히 잠든 무리들 때문에 초원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는 것은 만족스럽긴 했다. 음악 틀고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기에 한강이 적합한 곳은 아닌 것 같다. 토요일 오후, 대부분 한가로이 가족과 함께. 그렇게 보내는 곳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논문 심사를 앞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